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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미사일(ABM) 협정





1972년 5월26일 밤 11시 5분, 모스크바 크렘린궁.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전략무기제한협정을 맺었다. 6시간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한 협정의 골자는 요격용 미사일 제한. 상대방이 발사하는 대륙간탄도탄(ICBM)을 공중에서 맞히는 요격미사일(ABM) 발사 기지를 두 곳으로 제한하고 배치 수량을 200기로 한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

당시 두 나라의 ICBM 전력은 미국이 1,504기, 소련이 1,600기를 보유한 상태.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탑재한 전략 원자력 잠수함은 미국이 41척, 소련이 42척을 갖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력이 엇비슷해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ICBM은 한 발이 3~14개의 자탄(子彈)으로 분리되는 다탄두인 반면 소련은 다탄두 초보 기술을 갖춰가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탄도 마찬가지. 미국 전략원잠은 다탄두를 실었으나 소련 잠수함은 단일탄두 밖에 없었다. 정확도 차이는 더욱 컸다. 미국의 다탄두 미사일은 각기 독립된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었지만 소련은 ICBM이든 SLBM이든 정확도가 극히 떨어졌다. 대신 탄두 위력을 키웠다. 메가톤 단위의 폭발력을 가진 소련 ICBM은 목표지점에서 한참 빗나가도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이 나온다. 미국과 소련은 왜 군비 경쟁을 억제한다면서 방어용 무기를 제한했을까. 요격 용도의 미사일은 목표의 2~3배를 할당하는 게 통례. ICBM과 SLBM이 수천기라면 요격 미사일은 적어도 같은 수량이거나 2~3배에 이르러야 하는데 미국과 소련은 왜 200기 이내로 묶었을까. 요격 미사일을 오히려 늘리는 게 평화에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나올 법 하다.

미국과 소련은 반대로 생각했다. ABM 협정을 맺으며 양국은 국가 전체 방어망 구축을 포기하는 데 쉽게 의견을 모았다. 만약 어느 한쪽이 약속된 장소와 약속된 수량 이외에 요격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거나 추가로 요격미사일을 생산, 배치할 경우 다른 한쪽의 선제 핵 공격을 인정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미국과 소련 어느 쪽도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능력을 갖추면 안된다’는 것이다.

미·소의 합의에는 공격능력을 살려둬야 서로 무서워 도발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개념이 깔려 있다. 요격용 미사일을 200기씩 인정한 것도 선제공격을 받은 쪽의 수뇌부가 수도권에서 보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남겨주자는 취지다. 모든 목표는 딱 한 곳에 맞춰져 있었다. ‘서로 못 믿어 핵무기 경쟁을 펼쳐도 핵 전쟁만큼은 막자.’

미국과 소련이 이런 합의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한 경쟁의 끝을 서로 두려워했기 때문. 돈도 돈이지만 지구촌 공멸에 대한 위기감이 협정 타결을 이끌었다. 요격미사일이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협정 타결의 요인으로 작동했다. 속도가 마하(음속) 10~12배로 날아오는 ICBM을 요격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직접 맞추기가 어려우니 예상진로에 핵폭탄을 터트리는 방식. 요격 미사일 자체가 핵폭탄이어서 지구촌 환경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다.



협정은 잘 지켜졌을까. 대체로 그랬다. 협정을 갱신할 때마다 서로 트집 잡고 싸웠지만 ABM 협정과 그 바닥에 깔린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제3차 세계대전을 방지하는 장치로 작용해왔다. 문제는 30년 동안만 이 협정이 효력을 냈다는 점. 미국에 의해 2002년 깨졌다. 전면적 핵전쟁 가능성이 낮아졌어도 ‘불량 국가’에 의한 핵공격 위험에 대응하는 데 이 협정이 장애물이라고 판단한 부시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깨버렸다.

협정을 파기한 미국은 지구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망(Missile Defence) 구상에 매달렸다.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된다는 지적에 따라 수차례 취소와 부활 과정을 겪고 이름도 몇번 바뀌었으나 MD 계획은 여전히 살아 있다. 문제는 ABM 협정을 무력화하고 등장한 MD를 둘러싼 갈등이 가장 심한 지역이 바로 한반도라는 점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과 소련이 ABM 협정을 맺었던 44년 전 오늘 서독과 동독은 동베를린에서 만나 ‘동·서독일반통행협정’을 맺었다. 양독(兩獨)은 이 협정으로 서로에게 도로와 철도, 운하와 해상통행을 터놓았다. 한국이나 서독이 둘 다 분단국가였는데…. 오늘날의 현실은 참으로 다르다. 한반도에 내린 시련과 고통은 언제나 걷힐 수 있을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전략무기제한협정의 틀에서 요격미사일협정(ABM Treaty)로 불리는 이 협정은 개정을 거쳐 요격미사일 기지를 수도권 1곳으로 줄였다. 처음 발표된 이 협정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 ① 미국과 소련은 각각 수도권과 1개 탄도탄기지 주변 등 2개소에만 요격용 미사일 200기를 배치한다. 미국은 수도 워싱턴 주변 이외에 노스타코타주 그랜드포크에, 소련은 수도 모스크바 그리고 수도에서 1,300㎞ 떨어진 한 곳 등 두 곳에 요격미사일망을 설치한다. ②대륙간탄도탄과 잠수함발사탄도탄을 동결한다. 그러나 여기에 핵탄두나 전략폭격기, 그리고 순항미사일은 포함하지 않는다. ③방어용 무기에 대한 협정은 무기한이고 공격용 무기 동결은 5년간의 협정기간을 거쳐 양국은 영구적이며 보다 완벽한 협정을 체결할 협상을 벌인다.

** 국내 언론은 당시 소련의 전략원잠이 42척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23척이었고 나머지는 건조 목표였다. 소련은 미국에 비해 성능은 물론 배치 수량까지 떨어지는 전략원잠의 전력 격차를 좁히려 구형 디젤 잠수함에 SLBM 2~4기를 적재해 1980년대 말까지 운용했다. 주목할 대목은 구 소련의 디젤 전략 잠수함 운용 전략을 북한이 물려 받았다는 점. 북한이 SLBM이라고 주장하는 미사일을 적재한 신포급 디젤 잠수함의 원조가 냉전 시기에 소련이 고육책으로 운용하던 디젤 전략잠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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