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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vs '닫혀라 참깨'





인도와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부르키나파소. 참깨 수출 1~5위 국가다. 하나 같이 기계보다 사람의 노동력이 더 싼 나라들이다. 다시 말하면 참깨는 가난한 나라들의 주력 농산물이라는 얘기다. 당연하다. 기계화가 어려우니까. 수입국 순위는 중국과 일본, 터키, 한국, 이스라엘. 주요 무역품목 중에서 531번째 품목이라는 참깨의 세계시장 규모는 약 32억 달러 남짓하다.

금액과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참깨(정확하게는 참깨 씨앗) 시장은 성장 산업이다. 중국의 수요 증가 때문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출 1, 2위를 오가던 중국은 세계 수입액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수요가 커졌다.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도 공급이 따라갈 수 있을까. 가능하다. 참깨 생산이 늘어날 수 있는 두 가지 변수가 대기 중이다.

첫째는 품종 개량.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 인도, 일본에서 다수확 품종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두 번째는 참깨 농업의 완전 기계화. 참깨 수확에는 사람 손이 많이 간다지만 미국의 정책이 변수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연간 420만톤인 세계 참깨 생산량은 몇 곱절 늘어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열려라 참깨’가 ‘닫혀라 참깨’로 바뀌고 있는 까닭이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보물 창고를 여는 암호인 ‘열려라 참깨’는 허구 속의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열려라 참깨’라는 표현에는 참깨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일년생 풀인 참깨는 수확기에 접어들면 꼬투리의 아래 부분부터 벌어진다. 참깨 씨앗이 땅에 떨어져 못 먹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했다.

드넓은 목화밭 주변이 온통 참깨였으나 수확기가 목화와 겹쳐 참깨 씨를 건지려 노동력을 투입할 수 없었다. 결국 90%는 땅에 떨어지고 꼬투리에 남은 10%에서 일부만 채취하는 게 미국의 참깨 농사였다. 노예해방으로 흑인 노예가 사라진 뒤부터 참깨 수확은 더욱 어려워졌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세계 2차대전 직후. 획기적인 신품종이 나왔다. 수확기에도 꼬투리가 벌어지지 않는 품종을 개발한 것이다.

신품종 개발의 주인공은 미국인 데랄드 랭험(Derald G. Langham) 박사. 돌연변이종을 1946년 새 품종으로 발전시켰다. 개과(開果·dehiscent)작물이던 참깨는 폐과(閉果ㆍnon-dehiscent) 작물의 특성을 동시에 갖게 됐다. 참깨의 종류가 ‘열려라 참깨(開果, dehiscent, 脫粒도 같은 뜻)’ 일색에서 ‘닫혀라 참깨(閉果, non-dehiscent, 耐脫粒)’로 양분되며 미국의 참깨 농업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로이 앤더슨과 제임스 앤더슨 형제는 신품종에 주목해 1952년 텍사스주 달라스시 인근 파리카운티에 참깨농장과 유통회사를 차리고 참깨 크래커와 칩, 마가린, 햄버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햄버거에 깨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앤더슨 형제는 참깨 사업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인종차별 없이 고용하고 종업원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 기업가로 기억된다.*



미국이 보유한 ‘닫혀라 참깨’ 품종의 기술은 철옹성이다. 꼬투리가 벌어지지 않아 참깨가 땅에 떨어지지 않는 품종의 기술 제공에 극히 인색하다. 빈민 구제와 기아 해소에 관심이 많았던 랭험 박사**는 1991년 5월 27일 타개하기 전까지 외국에 기술을 어렵지 않게 전수해줬으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관련 특허를 갖고 있는 세사코(SESACO)를 일본 미쓰비시가 인수한 뒤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꾸준한 기술 개발로 세사코가 보유한 최신 ‘닫혀라 참깨’종은 줄기가 강하고 키도 커 콤바인으로 수확에서 탈곡, 포장까지 단 한 번의 작업으로 끝난다. 한국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30배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오래전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닫혀라 참깨’종인 ‘새품깨’를 개발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습도가 높아 줄기가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광활한 땅과 우수한 품종, 기계화까지 완벽하게 이룬 미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세계 참깨시장의 변동은 시간 문제다. 한국의 참깨 농업은 기로를 맞고 있다. 지난 1987년 한때 완전 자급자족을 이룩했으나 점점 수입이 늘어나 자급률이 10% 안팎으로 떨어졌다. 국산 참깨의 우수성에 기대어 시장을 겨우 유지하고 있으나 미래는 불확실하다.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려는 극소수 농생물 과학자들의 연구가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한 국산 참깨를 구하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과연 품종 개량과 대규모 기업농이 인류에게 도움인지 재앙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닫혀라 참깨’ 품종으로 무장한 외국 농산물 회사들이 국내 시장을 향해 ‘열려라 참깨’를 외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앤더슨 형제는 파리카운티 교외에 땅을 사들여 종업원 자녀를 위한 유아원과 유치원 등 교육시설에 투자하고 ‘참깨 거리(Sesame Street)’라는 이름을 붙였다. 1969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됐다. 파리카운티에는 아직도 세서미 스트리트라는 지명이 남아 있으나 정작 극중 세서미 스트리트의 주소는 맨해튼 123가(街)다.

** 미국 록펠러 재단이 베네수엘라에 파견한 농업지도관이었던 랭험 박사는 베네수엘라에 10여년간 머물며 농업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린 공로로 유명하다. ‘베네수엘라 현대 농업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는 생전에 한국 등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닫혀라 참깨’ 품종과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그의 유업인 참깨 회사를 일본계 자본이 인수하며 꽉 막혀 버렸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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