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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39> 무엇이 위기인가





2017년 위기설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단 다양한 지표들이 머지않아 우리에게 찬바람이 몰아 닥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지속적인 저성장 국면 속에서 국가 경제 분위기가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 중국이나 동남아보다 생산 경쟁력이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도 혁신을 미루고 투자를 줄이며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감축해 ‘환란’에 대응하겠다는 수동적 자세를 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개인들은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살아갈 궁리를 하게 된다. 스토(Staw)라는 조직심리학자는 위협경색(threat rigidity)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바 있다. 위기가 닥쳐 오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일대 혁신이 필요한데, 오히려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면서 조직 전체가 보수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좀처럼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위기는 진짜 위기라기보다 정치적으로 활용되어 온 측면도 있다. 경영학자들은 ‘내부적으로 조성된 위기’(autogenic crisis) 개념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회사가 휘청거리거나 극심한 경쟁에 내몰려 빈사(瀕死)할 만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더 긴장하자’고 이야기하는 습관이다. 위기 의식은 우리 기업들이 오랫동안 성장세를 유지해 온 비결 중 하나였다. 1년 농사가 조금이라도 부진하다 싶으면 CEO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직원들에게 긴장할 것을 주문해 왔다. 오전 8시 출근이 6시 출근으로 앞당겨지고, 7시 퇴근이 9시, 10시로 미뤄지는 건 관행이었다. ‘비상경영’의 본질은 임원이나 직원들이 거의 잠을 못 자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서 시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직들은 ‘위기’를 빌미로 더 많은 회의를 거듭했으며, 예산을 써가며 대책 기구를 만들고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독려했다. 결국 내부적으로 조성된 위기는 진짜 혁신을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최고경영자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활용돼 왔던 것이다.



가만 보면 정치권도 기업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아 ‘위기’를 마케팅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우리 경제 생태계에 몰아 닥칠 위기와 거버넌스의 불안정 상태를 혼돈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 최근 여야는 각종 법안의 처리를 두고 ‘주고 받기 식’ 협상으로 여론의 눈총을 샀다. 여권의 경우에는 경제 관련 법들의 빠른 처리만이 위기 대책이라고 주장해 왔던 반면, 야권은 진정한 위기는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난상토론이 오갔다. 결과적으로 어떤 것이 위기이고 대처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콘텐츠’는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저 ‘위기가 있다’ 또는 ‘그것은 누군가의 책임이다’라는 식의 비생산적인 논쟁만이 오갈 뿐이다.

안타깝게도 앞으로의 경제 문제는 카리스마 리더의 등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로 지역감정, 제왕적 공천권에 기반했던 카리스마 리더십이 재조명됐지만 오늘날 재현될 수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적용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산업 안의 상호작용은 더욱 복잡해지고, 시장과 분야 간의 경계도 갈수록 모호해진다. 공교롭게도 장밋빛 전망만을 안겨줄 것으로 느껴지는 ‘융합’이라는 현상은 각 경제주체간의 연관성을 높이고, 차이를 줄이면서 각 분야의 연쇄 위기 위험성 역시 높이고 있다. 그래서 리더 한 사람이 상황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시대에 ‘위기’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이 절실할 뿐이다. 껍데기뿐인 위기론도, 쓸데없이 근무시간만 늘리는 껍데기 꾸미기도 마뜩잖은 이유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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