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진 돌부처도 풍상(風霜)을 견디지는 못한다. 한들거리는 바람, 흘러내리는 빗물은 미약하지만 유구한 시간 앞에서는 돌덩이도 비누처럼 녹아내리기는 마찬가지다. 조각가 신미경은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며 제 몸을 녹여 없애는 비누를 통해 문화와 예술품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는 중이다. 대표작인 ‘화장실 프로젝트’는 정통 불상형식을 충실히 따라 깎아 만든 비누 조각을 미술관과 전시장 등 공공 화장실에 설치해 두고 사람들이 실제 손을 씻는 데 사용하게 한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을수록 조각은 점점 쪼그라든다. 마치 시간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비누조각은 화장실에서 다시 전시장으로 옮겨지면 마치 오랜 세월을 거친 듯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전시대 위에 놓여 예술품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옛 유물을 본래 있던 곳에서 이탈시킨 박물관 수집품에 대한 풍자와, 수 백 수 천 년의 세월이 쌓아 올린 예술품의 권위에 대한 작가의 도전이 신선하다. 확고부동한 가치와 닳아 없어지고 사라지는 무가치함의 백지장 같은 차이도 흥미롭다. 코오롱이 문화예술 나눔공간으로 개관한 ‘스페이스K 과천’에서 9월9일까지 열리는 신미경의 개인전에서 이들 작품을 보고 체험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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