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1시30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공장 근로자들이 일제히 쏟아져나왔다. 노조의 파업 방침에 따라 평소보다 2시간 빨리 집으로 가는 근로자들의 표정에서는 ‘파업’이라는 비장한 결의나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현대차 울산공장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현대차 공장이 파업으로 일시 멈춰섰다.
울산 북구에 있는 자동차 공장을 떠나 차로 10여분을 달려 동구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을 찾았다. 이날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회사가 구조조정 방안의 하나로 분사를 진행 중인 설비지원 부문 조합원이 오후2시부터 3시간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각종 전기기기 수리와 보수, 시설물 수리·보수를 맡은 설비지원 부문의 특성으로 인해 공장에서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크레인이 움직이고 각종 대형 구조물에서 용접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후3시께 본관 앞에서 집회가 열렸으나 참석자는 230여명에 불과했다. 설비지원 부문 조합원 700여명 가운데 분사를 결심한 절반 이상의 조합원이 빠진 결과로 이날 분사에 반대하며 집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의 표정은 모두 굳어 있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노조가 23년 만에 함께 파업을 벌였다. ‘동시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양 노조는 연대감을 과시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현대차는 기본급 인상을 비롯한 임금인상 폭이 가장 큰 핵심이다. 노조는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7.2%(15만2,050원, 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8,000여명에 이르는 일반·연구직 조합원의 승진 거부권 △해고자 복직 △통상임금 확대와 조합원 고용안정대책위원회 구성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따른 임금 보전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임금피크제(현재 만 59세 동결, 만 60세 10% 임금 삭감) 확대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조항 개정 △위기대응 공동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을 노조에 요구했다. 현대차 노사는 오는 30일 여름 집단휴가 전 타결을 목표로 막바지 밀고 당기기를 남겨둔 채 힘겨루기를 하는 형편이다. 퇴근하는 근로자의 표정이 어둡지 않았던 것은 두둑한 보너스와 함께 휴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듯 보였다. 현대차는 올해 6월 국내 6만9,970대, 해외 37만4,650대 등 전 세계 시장에서 지난해보다 9.1% 증가한 44만4,620대를 판매했다. 반면 현대중공업 노사는 구조조정 문제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회사는 이미 수조원에 이르는 적자와 함께 저유가 지속에 따른 수주 가뭄 등으로 비상 상태다. 지난 5월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던 현대중공업은 대리급 이하 사무직·생산직 직원까지 희망퇴직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반해 노조는 ‘인력 조정 방식으로 이뤄지는 구조조정은 안 된다’며 회사에 맞서고 있다. 집회 현장 어디에도 임금 인상 요구는 없었다.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인력 조정이 자신에게도 닥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회사는 28일 노조 창립기념일부터 시작해 최장 19일의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일감이 없어 길어진 여름휴가로 노사 모두 마음이 편치 않다. 현대중공업은 수주 부진, 해양플랜트 공정 연기 및 인도 지연이 이어지면서 지난해에도 1조5,40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양 노조는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20일 태화강 둔치에서 여는 ‘울산노동자 총파업대회’에 함께 참여해 연대투쟁을 과시한다. 두 노조는 한때 국내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현대그룹노조총연합’을 이끄는 양대 축이었다. 1990년 현대그룹 30여개 계열사 노조를 모아 임금·단체협상과 함께 무노동 무임금 철회, 노동법 개정 반대투쟁 등 강력한 파업을 무기로 대정부 투쟁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이 너무 달라 이들 노조의 연대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울산=장지승기자 j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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