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법 행위를 따진다면 누가 더 잘못했을까. 진경준 검사장과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얘기다. 인사혁신처는 19일 중앙징계위원회를 열고 교육부의 요청대로 나 전 기획관에 대한 파면을 의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를 어겼다는 게 이유다. 나 전 기획관은 최근 언론사 기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발언해 파문을 빚었다.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망언이었음에 틀림없다.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 등 6단계로 구분되는 공무원 징계 중 가장 강도가 높은 파면을 결정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진 검사장 역시 최고수위의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범죄수익 자체가 큰데다 거짓 해명으로 일관해 검찰 위상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이미 김수남 검찰총장은 진 검사장에 대해 최고수위 징계를 내리고 넥슨으로부터 주식을 공짜로 받아서 번 126억원 등 범죄수익을 최대한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현직 검사장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은 진 검사장에 대해 현 단계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 징계는 해임이다. 검사징계법에는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등 5단계만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달리 파면조치를 내릴 수 없다. 헌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돼 파면은 국회의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특임검사 기소 시점에 맞춰 이뤄질 진 검사장에 대한 최고징계로 해임이 거론되는 이유다. 법관 신분에 대한 보장은 더 엄격해 징계는 정직·감봉·견책 등 세 가지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파면이냐, 해임이냐에 따라 퇴직금과 연금 차이가 너무 크게 달라진다. 퇴직한 뒤 오로지 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인지 자꾸 그 불합리성에 눈길이 간다. 파면당한 나 전 기획관은 퇴직금을 절반만 받고 연금도 본인이 낸 만큼만 받을 수 있게 돼 절반 수준으로 깎인다. 앞으로 5년 동안 공무원 임용도 제한된다. 그는 ‘국민모독죄’라는 정서법에 걸렸지만 범법자는 아니다. 물론 나 전 기획관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진 검사장은 다르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을 뿐 범법자나 다름없다. 그가 벌어들인 126억원의 수익과 무상으로 제공 받은 승용차는 뇌물이어서 당연히 환수 대상이다. 그런 그는 퇴직금과 연금법상 받는 불이익이 없다. 굳이 이런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이유는 헌법에 보장된 신분인 만큼 더 엄격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특혜일 수밖에 없다.
이번 진 검사장 사태로 주식정보를 다루는 검사는 주식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고 검찰 고위직에 대한 감찰기능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지만 미약하기 그지없다. 이제 와서야 주식정보를 다루는 검사에게 주식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진작 했어야 할 조치다. 비위검사의 퇴직 후 변호사 자격취득 제한 방안도 두고 볼 일이다. 흔히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변호사 면허는 종신제나 다름없다. 취소됐다 하더라도 취소 사유가 소멸했거나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자격 등록을 하면 살아날 수 있다.
검찰은 과거 스폰서검사·벤츠검사 사건 때는 물론이고 수도 없이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셀프 개혁’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오죽했으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일부에서조차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검찰은 기소독점권 등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그 힘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잘못 사용되는 힘과 특권은 거둬들여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범법자도 아니면서 파면조치까지 당한 나 전 기획관만 억울하지 않겠나 싶다. 이용택 논설위원 ytlee@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