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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김영란법과 강의료

/출처=이미지투데이




‘포장이 같다고 다 같은 가격을 매겨도 될까. 알맹이는 뭔지도 모르면서’

이런 생각이 스쳤다. 28일 합헌결정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김영란법 이야기다. 헌법재판소라는 마지막 관문까지 넘어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에는 강의료 상한선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장관급은 시간당 50만원, 차관급 40만원, 4급 이상 30만원, 5급 이하 20만원 그리고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직급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원이 한도다. 시간당 몇 십만원에서 많게는 백만원이다. 시급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액수다. 프리랜서는 김영란법의 대상이 아니니 부수입인 셈이다. 그렇다, 월급 외 수입이다. 한 두 시간 떠들고 받는 돈 이라고 생각하면 10만원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한 시간 강의를 위해 한 시간만 투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역량과 지식이 바탕이 된다. 이미 직업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데 외부 강의까지 챙겨야 겠느냐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강사가 많은 돈을 대가로 받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강의 콘텐츠와 강의력 등에서 충분히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대학교수라도 강의료가 다르다. 청중 공감도에서 차이가 나니까. 제 값을 못 한 강사라면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얼마나 알찬 강의였는가를 청중, 주최측 등에서 다면도로 평가해 형성된 평판이 가장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정부가 인간의 근로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다루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싶어졌다. 우선 성과 연봉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노동개혁의 완성품으로 불리는 성과 연봉제는 사람들이 능력껏, 일하는 만큼 돈을 받아 가게 하겠다는 복안이 숨어 있는 조치다. 이 제도는 일률적으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동양적 정서를 혁파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이다. 이 관점 대로라면 김영란법에 입각해 직급 별로 강연료를 일률 결정하는 것은 성과에 기반한 대가 지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 장관보다 4급 서기관이 특정 분야에서는 더 훌륭하고 능숙한 강사일 수 있는데, 직급을 기준으로 강의의 질을 재단 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과연 국방부 장관이 기술 분야 전문가인 서기관보다 사드의 안전성에 대해 더 해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직무와 관련 없는 강의는 어떠한가. 취미로 시작한 분야에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강연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게 합당하냐, 자신이 배운 것과 노력한 것이 정말 돈을 위해서만 이루어진 것이냐고 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유명세를 타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강의 잘하는 사람 많다고.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수강료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다고. 때에 따라서는 이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좋은 조치가 ‘김영란법’이 될 거라고. 충분히 합리적인 시각이라 생각한다. 또 김영란법은 강의료를 명목으로 각종 명사들에게 ‘금전적 편의’를 제공하는 관행을 근절하는 목적도 있고 하니, 진짜 ‘강의’를 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가치’를 얼마짜리일 것이라고 어림짐작해 천편일률적인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강연 시장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고급 교육과정을 듣길 원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라고 말한다. 전통 교육 기관에서 그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 제대로 된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 갈증 때문이라고. 일류 강사의 말과 글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강연은 그 사람의 능력뿐만 아니라 지위, 인지도 등 매력을 통해서 완성된다. 대중들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디어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고, 때로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조금 진부하지만 힐링(healing)을 받기도 한다. 만약 김영란 법에 의해 합리적 대가 산정이라는 명목으로 강연료가 제한된다면, 이들의 자발적 참여가 과연 얼마나 가능할 지 의문스럽다.

접대성이 짙은 선물이나 식사의 가격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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