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지금 당장 세계 경제의 최대 리스크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 경제는 침체국면에 빠질 것입니다.”
앨런 크루거(56)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경제정책 제안과 발언은 즉흥적이고 무모하기 짝이 없다”며 “트럼프의 자질 부족이 드러나자 (백악관행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증시 등 금융시장이 리스크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 이후 중국ㆍ멕시코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관세 부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등 모든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등의 공약을 시행할 경우 미국 등 글로벌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비해 일본은행(BOJ)은 효과가 매우 작고 추가 정책수단도 소진했다”며 “장기간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헬리콥터 머니’ 형태와 같은 극단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경제정책 마련에 깊숙이 관여해온 학자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이 재집권할 경우 엔화약세를 동반하는 일본의 유동성 풀기를 용인해야 한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한국에 대해서는 저성장 국면 극복을 위해 인적자본 투자라는 기존의 강점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 발전, 소매업 등 서비스 산업 구조조정, 급성장 중인 동남국가연합(ASEAN·아세안) 지역 공략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7월24일 e메일로 이뤄졌다.
-세계 경제 회복세가 여전히 취약한데.
△좋은 뉴스가 있다면, 비록 성장률은 낮지만 회복세가 끈기 있게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글로벌 경기회복은 최근 몇년간의 속도이거나 약간 더 빠를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은 다른 시기보다 느린 경향이 있다. 세계 경제가 최근 몇년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1~2년간 글로벌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는 무엇인가.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가능성 등 많은 위험요소가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는 확실히 영국과 유럽연합(EU)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일본 경제의 지속적인 디플레이션과 저성장도 리스크다. 일본은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소진됐다. 중국의 높은 신용 레버리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의 군사적 갈등도 또 다른 리스크다.
-일부에선 강(强)달러·브렉시트 등의 여파로 미 경제도 침체로 빠질 것으로 전망하는데.
△미 경제는 올해와 내년까지 확장을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미 경제가 침체국면에 들어갈 중대한 위험이 있다. 미 경제는 많은 충격에도 끈질긴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 브렉시트나 강달러가 미 경제침체를 초래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현실화하면 어떻게 되나.
△심지어 (2012년 공화당 대선주자)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지사 같은 공화당원들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 경제가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상 유례없이 대통령의 자질이 없는 인물이다. 경제정책 제안은 즉흥적이며 사전준비가 돼 있지 않고 발언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금융시장은 트럼프 리스크를 완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반영됐다면 주가는 지금보다 더 떨어졌을 것이다. 다행히도 트럼프가 대통령에 부적절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시장이 트럼프 리스크를 경시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이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미국의 국제적 평판에 손상을 입히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또 미국의 적들이 새로운 전사들을 모집하기 쉬워지고 전 세계의 유능하고 야심 있는 인재들에게 미국은 이민에 매력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 트럼프 때문에 훼손된 미국의 명성과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언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는가.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에 극도의 인내심을 갖고 있다. 연내 금리를 올릴 확률을 50대50으로 본다. 올린다면 아마도 오는 9월이 될 것이다. 연준은 (경기 회복세에 비해) 너무 빨리 기준금리를 올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보다 너무 느린 인상이라는 실수를 선호한다.
-금융위기 이후 마이너스 금리 등 각국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또 헬리콥터 머니 같은 정책에 따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금융시장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스웨덴, 미국 등이 디플레이션을 막고 더 나쁜 침체를 피하는 데 기여했다.
-역사적으로 연준의 금리 인상 때 신흥시장은 일대 충격을 겪었는데.
△신흥시장은 이전보다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견딜 만한 더 많은 강한 요소들을 가졌다.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때는 확실히 외국인 자금 유출 등으로 우려와 변동성이 다소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외환보유액 등의 측면에서 신흥국 상황은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 주가ㆍ채권ㆍ통화가 트리플 약세를 보이며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던)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 이래 개선되고 있다.
-부동산ㆍ금융 버블 붕괴,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중국 경제는 어떻게 보나.
△심각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 경제는 더 빨리 수출ㆍ인프라 건설 의존도에서 벗어나 소비 등 내수 중심 발전 모델로 이동해야 한다. 또 더 나은 사회안전망과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 이 같은 전환기를 다루는 작업은 어렵고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 중국은 성장 모델의 전환을 이루고 글로벌 기준에 비해 빠른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BOJ의 통화완화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며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경기부양 효과가 미국·유럽 등 다른 국가보다 훨씬 더 작다는 것이 명확하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만약 아베노믹스가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을 격퇴하는 데 실패한다면 일본은 경제 문제를 해결할 정책수단이 적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일본은 인플레이션 상승과 강한 성장을 위해 (통화정책 외에 재정지출 증가, 구조개혁 등) 모든 정책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일본 의회가 BOJ를 대신해 헬리콥터 머니 형태와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브렉시트로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영국은 EU 탈퇴 결정으로 큰 경제적 대가를 치를 것이다. 파운드화 가치 급락은 그 징후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필연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브렉시트 후폭풍과 난민 위기에 따른 EU 회원국의 도미노 이탈과 EU 붕괴 가능성은.
△다른 회원국의 EU 탈퇴 욕구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가혹한 운명을 지켜보며 EU 잔류를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스페인 선거에서 증명됐다(6월26일 스페인 총선에서는 영국의 정치ㆍ경제적 혼란을 지켜본 유권자들이 안정을 택하면서 반(反)EU를 앞세운 포데모스가 당초 예상을 뒤엎고 패배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피즘은 자유무역, 불평등 증가 등에 대해 유권자들이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세계 지도자들은 글로벌화의 부정적 측면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많은 나라가 세계무역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세계무역의 규칙이 공평하고 한결같고 균일하게 시행되도록 강제돼야 한다. 또 글로벌화의 부정적 영향으로 실직한 근로자들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고령화와 저출산, 가계부채 증가에다 일본과 중국 사이의 ‘넛크래커’ 신세가 되면서 저성장이 고착화됐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은 교육, 기술, 노동인력 훈련 등 인적자본 투자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지식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은 서비스 부문, 특히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소매업을 더 생산적인 산업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소매업 경쟁과 합병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들 산업에서 퇴출된 인력들을 주요 하이테크·헬스케어 산업 발전으로 흡수해야 한다. 한국의 또 다른 큰 기회는 아세안 지역에 있다. 한국은 급성장하고 있는 이들 지역에서 이익을 얻을 만한 강점을 가졌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불평등 증가, 중산층 축소 등의 여파로 성장보다 분배 정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불평등의 덫(inequality trap)’에 빠진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성장은 필요하지만 더 포괄적이고 통합된 사회를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재능 있는 미국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기회가 줄고 사회적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경제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적절한 최저임금은 사회적 혜택을 덜 받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다. 근로소득세(인하) 같은 세제정책도 소득분배상 바닥에 있고 빚을 지지 않으려 분투하는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앨런 크루거 교수는>
백악관경제자문 역임한 ‘오바마 가정교사’
사회보험 등 노동경제학서 탁월한 업적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중 한 사람이다. 세계적인 노동경제학 석학으로 교육, 테러리즘, 소득 불평등, 사회보험, 노동 규제 등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재무부 차관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일하며 중소기업ㆍ중산층 지원, 고용 확대 등 다양한 경제정책을 입안해 ‘오바마노믹스’ 안착에 일조했다. 지금은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경제고문 가운데 하나다. 독일 IZA노동경제학상, 공공정책ㆍ관리협회의 커쇼상 등 권위 있는 상을 다수 수상했다.
◇약력 △1960년 미국 뉴저지주 리빙스턴 △1983년 코넬대 경제학과 △1987년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1987년~ 프린스턴대 교수 △1994년 미 노동부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5년 전미경제학회 집행임원 △2009년 재무부 차관보 △2011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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