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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세대 착취’가 ‘세대 연대’라는 요설

연금·재정 등 청년 부담 증가에도

진보 진영, 세대 불평등 문제 둔감

이대론 ‘지속 가능한 성장’ 어려워

미래 희망 주려면 구조 개혁 시급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1987년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브룬틀란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개념이다. 현세대는 자연을 약탈하지 않고 미래 세대와의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화두는 주로 환경 영역에서 사용되다가 이후 경제·사회 영역으로 확장됐다. 특히 아동 노동 금지, 공정 무역,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복지 확대, 국가 간 불평등 해소 등 진보 진영의 주요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희한한 점은 어느 나라든 좌파 성향일수록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하면서도 세대 간 불평등 문제에는 둔감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후변화 문제 등에 대해 인류의 자성을 요구하지만 미래 세대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책임은 회피한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16세 때 어른들을 향해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외쳤다. 여기서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연금 고갈’이나 ‘재정위기’ 등으로 바꿔보라.

10여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수필집 제목을 두고 희대의 요설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내 집 마련은 물론이고 연애·결혼·출산마저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의 실존적 고민을 젊은 날의 열병쯤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요즘 등장한 기성세대의 억지 중 하나가 ‘세대 착취’가 ‘세대 연대’라는 주장이다. 올해 3월 여야는 18년 만에 국민연금 모수 개혁에 합의했지만 청년들은 ‘폰지 사기’ ‘폭탄 돌리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낸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아 가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각종 세금 외에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소득의 30~40%를 내야 한다. 하지만 진보 시민단체나 노동계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제기하면 “세대 간 갈라치기”라며 “사람이 재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자칭 ‘진보’라는 정치인들에게 유권자 수가 적은 청년 집단은 관심권 밖이다. 계층 간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 세력이 세대 간 불평등을 재촉하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우리 경제는 저출생·고령화, 부의 양극화, 성장 잠재력 하락 등으로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30년’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조선 등 전통 주력 제조업은 대부분 중국에 추월당한 처지다. 현재 사회의 주류인 586 세대가 부모들이 이룬 고도성장의 과실만 향유하고 지난 20년 동안 신성장 동력 발굴에 실패한 탓이 크다. 이 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직장 내에서 빠르게 승진했고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급등의 혜택을 받았다.

지난달 새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공개한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 보고서에는 ‘진짜’라는 단어만 64번 등장한다. 3대 전략으로는 기술 주도 성장, 모두의 성장, 공정한 성장을 내세웠다. 미래 전략산업을 키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고 모두가 상생하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려면 이해관계자들의 고통이 동반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말대로 실업이 늘고 기업 도산이 속출했지만 피나는 구조조정 끝에 경제 선진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새 정부는 미래 산업 육성을 내세우면서도 노동시장 유연화, 자영업 등 서비스 산업 구조조정, 연금 개혁 등에는 소극적이다. 주4.5일제 도입,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 등 기성세대의 환심을 얻으려는 정책만 구체화되고 있다. 지금은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기성세대의 고통 분담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전 국민에게 소비쿠폰을 나눠줄 게 아니라 구조조정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에게 제한된 재정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녀 세대에게 ‘586은 최악의 꿀 세대’라는 역사적 낙인이 찍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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