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구로구에 사는 최지태(가명·41)씨는 7살배기 아들의 초등학교 진학 문제로 요즘 밤잠을 설친다.
내년에 아들이 입학할 초등학교 학생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중국·조선족 출신의 다국적 자녀라는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온 환경이나 문화가 다른데다 일부 다국적 학생의 경우 우리 말도 제대로 못 해 아들의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입학하는 학교를 바꾸기 위해 현재 위장전입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중국·조선족 출신 등 다국적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 전입하거나 이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 학생 비중이 높은 학교로 입학하거나 전학하기 위한 이른바 ‘신(新) 엑소더스’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조선족 출신 학생들이 영등포·구로구 등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리고 있는데다 한국말조차 못하는 다국적 학생도 많아 생긴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다문화 학생 다섯 명 가운데 한 명(23.2%)이 영등포·구로·금천구 소재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 가운데 다문화 학생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초등학교로 영등포구 소재 A초등학교의 경우 10명 중 4명이 중국·조선족 등 출신 학생이다. 영등포·구로의 B초등학교와 C초등학교도 각각 다국적 학생 비중이 29.5%, 29.2%에 달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5월 조사한 다문화 학생 비율 상위 20개 초등학교 가운데 13곳이 영등포·구로·금천구에 있다.
문제는 서울 일부 지역 특정 초등학교에 중국·조선족 출신 등 다문화 자녀들이 많이 몰리면서 이들을 피해 다른 학교로 입학하거나 전학을 하려는 위장전입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해마다 다문화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앞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0∼6세 사이 예비 초등학생 수가 12만명가량으로 추정되고 있어 위장전입 등 이들 지역에서의 탈출 행렬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 5만5,780명이었던 다문화 학생 수는 지난해 8만2,536명으로 늘었다.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인 곳은 초등학교로 같은 기간 1만849명이 증가했다. 게다가 중국·조선족 등 일부 학생의 경우 우리 말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다국적 학생 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언어의 장벽까지 생기면서 이래저래 엑소더스만 가중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이들 지역 초등학교의 학생·학부모·교사 등을 취재한 결과 한 반에서 1∼3명가량이 우리말을 전혀 못했다. 구로구 한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현주(가명·10)양은 “우리 반 3명은 한국말을 알아듣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며 “공부도 못해 놀 때도 셋이서만 어울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의 1학년 자녀를 둔 최상준(가명·42)씨는 “중국에서 살다 5년 전 한국으로 온 저와 달리 6개월 전에 입국한 아들은 기초 의사소통 외에는 하지 못해 국어는 물론 다른 수업도 90%가량 이해하지 못한다”며 “아들이 편한 중국말이 통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한국말이 좀처럼 늘지 않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교사들 역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수업은 물론 지도조차 쉽지 않다”며 “이중언어 교사 등을 통해 따로 이야기하고 있으나 다문화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이마저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중언어교사는 늘어나는 다문화 학생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하지만 서울시 소재 학교에 1만1,890명의 다문화 학생이 재학 중인 데 비해 이중언어 교사는 15개교 17명에 불과하다.
차윤경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소수의 다문화 학생들이 특정지역에 쏠리고 언어마저 통하지 않으면서 서로 간의 이질감만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몇 년 전부터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순혈주의 등 인식이 바뀌지 않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중국·조선족 등 이주민이 늘면서 국내가 다문화 사회로 다가서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며 “정부는 이주민차별금지법 등 법을 만들거나 교사 등 교육공무원에게 다문화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을 차츰 바꿔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현덕·노현섭·박진용·이지윤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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