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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헬조선 탈북민 청춘은 ‘더’ 아프다

[기획]‘먼저 온 통일’, 2016년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나?

교육에 대한 열망보다 적응하기 힘든 대학생활

생활고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아

힘들게 취업하지만 ‘탈북민’ 꼬리표에 윗자리는 꿈도 못꿔

▲‘북한이탈주민’, ‘탈북민’, ‘새터민’ 등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많지만, 이들이 어떻게 교육을 받고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지 알고 있는 일반인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7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우리나라에 망명을 신청했다. 북한 최고 엘리트란 소리를 들었지만 태 공사는 과감히 탈북을 선택했다. 그는 망명 이유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과 자녀의 장래 문제’를 들었다. 점점 증가하고 있는 자녀 교육을 위한 ‘탈북 러시’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이는 비단 탈북한 엘리트 계층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세 명 중 두 명 꼴(66.4%)로 대학 진학을 원하고, 실제로 약 70%가 한국 고등 교육 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탈북 학생 수와 그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등교육과 취업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책은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탈북 학생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통일부와 교육부는 대학 등록금과 장학금, 고용지원금과 같은 단기적인 지원책만 쏟아내며 중장기적으로 통일 시대의 ‘선봉’에 설 이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

▦ 우리가 몰랐던 탈북 학생들의 ‘대학생활 고난기’

탈북 대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은 없다. 절반에 가까운 탈북민(46.2%)이 탈북 과정에서 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불가피하게 꽤 긴 ‘교육 공백기’를 겪을 수밖에 없는 탈북 학생들이 남한 대학생의 지적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탈북 대학생 김홍일(가명·26)씨는 “탈북 대학생 대부분이 남한 학생들보다 나이가 보통 4~5살 정도는 많은 편”이라며 “가뜩이나 늦은 나이에 학과 공부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노는 시간, 연애하는 시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두 탈북 대학생의 한달 수입과 지출


늦은 나이 뿐 아니라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상황도 탈북 학생의 어려움을 배가 시키는 하나의 요인이다. 대체로 생활이 어려운 북한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각종 단체에서 받는 장학금 혜택 기준을 채우는 것이다. 일정 학점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비교적 쉽게 주어지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장학금 수여 단체가 유치하는 통일 관련 행사에 불려 다니기도 한다. 탈북 대학생 정용현(가명·28)씨는 “가뜩이나 학과 공부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지만 장학금을 놓칠 수 없어 장학금을 주는 단체의 일정은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며 “북한 관련 행사가 많은 6월이나 8월은 이런 행사를 찾아다니다 기말고사 준비를 못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한 번이라도 휴학한 경험이 있는 탈북 대학생은 전체의 30.3%에 이른다. 국가에서 대학 등록금과 입학금 일체를 지원해 주고 있지만 교육비를 제외한 나머지 생활비는 스스로가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탈북 단체나 국가 기관, 대학에서 지급하는 장학금도 있기는 하나 선택을 받는 이들은 극소수다. 장학금 지원이 사적 네트워크로 ‘알음알음’ 이뤄지다 보니 탈북 대학생 사이에서도 정보 격차와 인맥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도드라지고 있다. 장학금 혜택을 많이 받는 학생들의 경우 각종 재단과 교회 단체 등에서 장학금을 받아 생활비를 모두 지불한 후에도 저축이 가능할 정도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돈을 빌려 생활비를 충당하고 다시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그 빚을 갚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같은 대학,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인 김미현(가명·26)씨와 박영현(가명·30)씨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런 현상의 심각성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둘의 한 달 생활비는 약 5~60만원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김씨는 평일에는 4시간 동안 택배 포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8시간씩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박씨의 경우 아르바이트 없이 120만원이 넘는 장학금(A재단 30만원, B재단 30만원, C교회 40만원, 학교 근로장학금 20만원)을 세 곳의 재단과 종교 단체에서 받아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약 50만원 가량의 여윳돈을 꼬박꼬박 저금하고 있을 정도다. 비슷한 시기에 입국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생활의 여유는 ‘하늘과 땅’ 차이다.

▦ ‘죽을 만큼’ 노력해도 보이지 않는 취업의 문

“남한 사람들은 ‘유리 천장’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저희는 그 유리천장 위에 ‘탈북민’이라는 쇠로 만든 천장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요.” 6년이라는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 겨우 지방에 있는 건설 업체에 취직한 김연희(30·여)씨는 지나온 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고향인 양강도를 등지고 지난 2007년 입국한 김씨는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했다. 취업에 필요한 토익과 각종 자격증에 심지어 탈북민 기관에서 봉사활동 시간까지 얻어 평범한 남한 학생에 뒤지지 않는 ‘스펙’을 만들었지만, 취업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문제였다. 원서를 내고 시험을 친 후 면접까지는 순탄하게 올라갔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지워지지 않는 ‘북한식 억양’ 때문에 낙방하기 일쑤였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써야지’라는 핀잔까지 들었다. 그렇게 떨어진 기업만 50곳이 넘는다.

말투에서 드러나는 ‘탈북민’이라는 주홍글씨가 취업에 발목을 잡는 것은 김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겸 통일학연구원장이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책임을 맡아 15세 이상 탈북민 1,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노동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93명 중 26.8%가 취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북한식 억양’을 꼽았다. 죽어라 ‘스펙’을 쌓아도,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업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상황이다.



탈북 학생들의 취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부는 탈북민의 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2014년부터 탈북민 채용기업주에 급여의 절반(50만원 한도)을 최대 4년간(기존 3년) 고용지원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사회에 진출한 탈북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단순한 금전적인 지원이 탈북민의 고용 환경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한 석·박사 6명으로 구성된 청년 통일 단체 ‘통일의별’ 백인주 상임이사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탈북 학생들을 채용하다 보니 아무래도 (지원금이 나오는) 단기간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업체들이 탈북민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기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원금이 나오는 4년이라는 기간이 지나면, 채용된 탈북민 근로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다른 탈북민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통일부의 고용지원금이 탈북민 취업장려수단이 아닌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6 통일박람회에 참석한 ‘통일의별’ 남북한 학생들. ‘통일의별’은 남북한 석박사 6명으로 구성된 청년 통일 단체로, 남북 청년들이 주체가 돼 통일을 모색하고 있다.


탈북 대학생들이 겪는 취업의 어려움은 정보력의 차이에서도 온다. 학연, 지연, 혈연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인맥’이 상대적으로 얕은 탈북민들이 얻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졸자 이상 탈북민들이 원하는 희망 직종과 탈북민 구인사업장의 구인신청 일자리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대졸 이상 탈북민들이 원하는 직종은 전문가 35.8%, 사무직 43.4%, 서비스직 6.9% 등 대학에서 받은 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직종이 많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탈북민 구직자와 연결된 구인사업장의 직종은 사무직 34.3%, 조립원 31.9%, 기능원 6%, 단순노무 16.9% 등 ‘고학력’이 요구되지 않는 단순 작업·기술 위주의 일자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 탈북 학생, “맞춤형 지원해야 더 빨리 정착할 수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탈북 학생들이 공교육 과정에 편입될 때 심리적인 치유를 전담할 전문 인력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리적인 치유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판이하게 다른 교육과정에 적응할 수 없으며, 결국 중도 이탈로 이어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현재 탈북 직전까지 북한에서 교사 활동을 했던 이들을 재교육시켜 ‘탈북 학생 전담 코디네이터’, ‘NK교사’ 등의 이름으로 탈북 학생들의 적응을 돕고 있지만 학생 수 대비 턱없이 적은 인력으로 인해 실질적인 진로와 심리 상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구섭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NK교사 등 북한 출신 교원들은 남한 교사들보다 탈북 학생들의 어려움도 알고 공감대 형성이 쉽다”며 “북한에서 교원으로 지내다 남한으로 건너와 직업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탈북 교원들이 전국적으로 16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을 실제 교육 현장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문제를 후방에서 지원할 대안교육 체제에 대한 정비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 중 하나다. 정규 학교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심리치료와 인성 교육을 기본 교육 과정에 포함하고 있는 교육부 인가 대안학교는 우리나라에 9곳(2014년 기준)이 전부다. 미술과 음악 등을 활용한 심리 치료 등 정규 학교에서 할 수 없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원이 30~50명에 불과한 이런 민간 시설들의 특성상 많은 학생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정규 교육에서 이탈한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탈북 학생 전문 대안학교의 추가적인 설립과 지원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탈북 학생 장학과 지원 제도를 한꺼번에 찾아볼 수 있는 실질적인 ‘탈북 대학생 포털’이 만들어져야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출발점이 다름을 인정하고 정보 격차에 따른 지원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9년 탈북해 중견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한승원(가명·30)씨는 “국가 기관과 단체에서 ‘뉴스레터’처럼 보내주는 정보만 있지, 실제로 이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며 “취업 정보와 장학금 모집 소식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포털’ 같은 곳이 생긴다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취업 지원 및 진로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탈북 학생들의 선호 직종에 대한 명확한 수요 파악도 중요하다. 탈북 학생들은 성별, 지역 등 환경의 차이로 선호 직종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취업 지원 시스템도 다르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등록금 지원, 근로지원금 지급 등 양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수요에 맞춰진 진학 상담이나 취업 연계 프로그램 제공 등 질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허수경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초기지원팀장은 “단순한 진로 프로그램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며 “기업·기관들과 연계해 인턴십을 거쳐 취업까지 연결되는 실질적인 취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종호기자 정승희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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