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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한국인像] <10> 계백

황산벌서 장렬한 최후





백제 말기에 성충이나 흥수 등 인물이 많았지만 대부분 계백(?~660)을 으뜸으로 친다. 황산벌 전투라는 장렬한 최후 때문이다. 결사대 5,000명으로 신라의 5만 대군과 승산 없는 싸움을 했다. 말이 좋아 ‘결사대’지 패망하기 직전 백제의 군사력이 그 정도뿐이었다는 해석이 보다 정확하다. 계백의 당시 벼슬은 2등급인 달솔. 최후의 위기에도 백제는 힘을 모으지 못하고 분열했다. 지금의 논산에 위치한 황산벌이 뚫리자 바로 수도 사비(부여)가 포위됐고 곧이어 함락된다. 사진은 충남 논산 구자곡초에 있는 그의 동상. 지난 1966년 제작된 국내 최초의 기마상이다. 원래는 부여군청 앞 광장에 있었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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