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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혼술남녀' 한 잔은 오늘의 위로, 건배는 내일의 용기

[최상진의 리뷰에세이] 드라마 '혼술남녀'

혼술이 트렌드로 자리잡은지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정작 어떤 모임에서도 ‘나 혼술했소’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혼자 밥먹고 술마시는건 처량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꼭 계산할 때는 신발끈을 고쳐 매거나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혼자 먹고 마시는게 편하겠다고 생각해보지만 이내 ‘도리도리’ 엄두가 나지 않는다.

tvN ‘혼술남녀’ 캡처




tvN 월화 미니시리즈 ‘혼술남녀’는 말로만 트렌드인 혼술에 대한 편견과 정면으로 맞선 통쾌한 작품이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많은, 또 외롭고 괴로운 사람도 제일 많은 노량진을 배경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진득하게 풀어냈다.

노량진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들을 하나씩 안고 있다. 일타강사 진정석(하석진)은 사람에 대한 배신, 박하나(박하선)은 사회초년생으로의 부담, 황진이(황우슬혜)는 결혼, 민진웅(민진웅)은 밝히기 어려운 어머니의 투병까지. 수험생들 역시 저마다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경계인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겉돌았다.

등장인물들은 마음의 고통을 혼자 풀어내려 술잔을 들었지만 맛만 쌉싸래하지 술맛이 좋을 리가 없다. 굳이 의미를 둔다면 ‘오늘 하루를 견뎌낸 것에 대한 답례’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작품은 이렇듯 한잔 두잔 쌓여가는 술잔에 사람의 온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매번 시험에 떨어지는 장수생 친구들은 여전히 놀고 있지만, 이들은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청춘에 가벼운 웃음으로나마 위로를 건넸다. 취업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멀어져야 하는 것이 우리네 청춘이기에 노량진 공시생들의 모습은 지난 추억에 대한 감상이자 현실에 대한 위로였다.

tvN ‘혼술남녀’ 캡처


작품이 결정적 메시지를 던진 에피소드는 민진웅 모친의 장례식장이었다. 노모의 투병 사실을 굳이 남에게 알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민진웅이 수업 후 모친의 부고 사실을 알게 된 뒤 주변을 스쳐가는 학생들 사이에 외롭게 서있던 건 ‘지독한 외로움’을 뜻했다.

이런 그의 손을 감싸준 이는 그렇게 앙숙 같던 김원장(김원해)이었다. “나 오늘 여기서 자고갈게” 한 마디는 고립된 자아를 밖으로 끌어낼 구원의 손이자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사람의 온기였다. 함께하면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힘들면 사람에게 기대도 된다는 작품의 또 다른 핵심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연애사에 집중했다. 삼각관계, 하룻밤 에피소드 등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로 등장했던 설정들이 쏟아졌다. 연애 분량이 부쩍 늘면서 관심도 높아졌으나 중반까지 이어온 메시지의 강도는 희석됐다. ‘응답하라1988’이 후반부 남편 찾기에 관심이 쏠리며 호불호가 갈렸던 상황과도 유사하다.

tvN ‘혼술남녀’ 캡처


물론 ‘혼술남녀’는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높다. 마치 초·중·결 3막으로 구성된 연극처럼 결과적으로 ‘혼자 마시는 술 한 잔은 오늘의 위로, 부딪치는 술 한잔은 내일의 용기’라며 끝맺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정을 나누고, 사랑하는 건 지극히 피곤한 일이지만 그게 또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않은가.

늦은 퇴근길, 홀로 차창 밖 한강의 야경을 내려다보거나 번화가를 걷게 된다면 문득 ‘혼술남녀’가 떠오르지는 않을까. 혼자 술마시는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이번엔 ‘심야식당’이 미치도록 그리워지지는 않을까. 지독하게 누군가가 그리울 때, 그때가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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