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며칠 전만 해도 이 같은 정치권의 요구에 큰 거부감을 나타냈다. 지난 27일에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등의 거국내각 구성 요구에 “왜 특정 정치인의 주장에 대해 답변을 해야 되느냐”며 논평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이후 의혹이 꼬리를 물고 여론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결국 우병우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을 해임한 데 이어 책임총리까지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시나리오가 책임총리제로 불릴지, 아니면 거국내각으로 불릴지는 명확하지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용어의 정의에 대한 해석차이일 뿐, 결론은 박 대통령이 새 총리에게 권한을 상당 부분 넘기는 쪽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경제와 행정 등 내치를 총리에게 내주고 자신은 남은 임기 동안 외교·안보·국방·통일 분야를 담당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은 ‘전권’을 주지 않으면 자리를 맡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박 대통령의 구상대로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이 같은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대단히 큰 결심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쇄신책을 단행해 무너진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상당 부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 등 자신의 주변에 대한 사법 처리 과정을 살피고 무난한 퇴임, 퇴임 후 명예회복 계획 등을 신경 쓸 것으로 예상된다. 베테랑 검사 출신이자 친여권 배경을 가진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최순실씨가 검찰에 출석하면서 청와대도 바빠졌다. 최순실씨는 귀국 전부터 검찰 수사에 철저히 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진술 내용이 언론에 노출될 경우 새로운 의혹이 연속적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다. 수사 대상 역시 확대될 수 있다.
청와대는 최순실씨와 의혹 당사자들의 검찰 수사 내용을 지켜보면서 실시간으로 대응책을 마련해 정국 흐름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추가적인 대국민 사과는 검찰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까지는 없을 것으로 정치권은 관측하고 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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