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환급금을 두고 관세청과 정유사들이 오랜 기간 끌어왔던 분쟁에서 조세심판원이 정유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정유사들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조세심판원이 ‘신의칙 위반’이라는 정유사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관세청은 여전히 정유사가 부당하게 관세를 과다하게 환급받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유사한 소송에서도 개별 사안에 대한 법적 공방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세심판원의 결정으로 정유사들은 3,000억원가량의 관세를 환급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관세청이 추징한 금액은 9,000억원이었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불복 절차 진행 과정에서 추가 환급시 가산세 성격의 가산금액을 환급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출용 원재료에 대한 관세 등 환급에 관한 특례법’을 들어 6,000억원가량을 이미 환급 받았다. 업계에서는 정유사들의 추가 환급 신청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환급 규모가 많게는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세 환급은 수출용 원재료를 수입할 때 관세를 먼저 징수하고 이 원재료를 가공해 수출하면 징수한 관세를 돌려주는 제도다.
하지만 관세청은 “조세심판원에서 아직 결정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수는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정유사들이 부당하게 국내 소비자에게 원유에 대한 관세 3%를 전가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에 내심 못마땅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관세청은 정유사들이 원재료를 수입·가공해 수출할 때 환급액이 큰 고유황(HS) 원유만 공정에 사용한 것처럼 꾸며 과다하게 환급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석유의 원재료에 모두 3%의 관세가 적용된 원유를 전제로 세전 판매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정유사가 관세 환급을 청구하면서도 내수용에는 관세를 모두 전가해 양쪽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관세청의 주장이다.
관세청은 또 정유사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0%인 원유와 관세 3%인 원유를 함께 사용했음에도 3%의 원유만 사용한 것처럼 신고해 관세를 환급 받아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관세가 있는 중동산 원유와 한·유럽연합(EU) FTA에 따라 관세가 없는 북해산 브렌트유를 수입한 뒤 국내에서 이를 가공해 다시 수출할 때는 관세가 책정된 중동산 원유로 신고해 관세를 부당하게 받아갔다는 것이 관세청의 주장이다.
반면 정유사들은 지금까지 유종을 구분해 관세를 책정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관세청이 갑자기 새로운 기준으로 관세 환급에 제동을 걸고 나와 매우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 결정으로 부당 환급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세청과 정유사 간 입장 차가 여전히 큰 가운데 조세심판원의 이번 결정 외에도 추가 신청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관세 환급을 둘러싼 법리적 공방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다른 건에 일정 부분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이번 건에만 효력이 미치기 때문에 다른 신청 건에서도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고 말했다./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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