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조휴정PD의 Cinessay-미션] 정의를 향한 두갈래 길

영화 미션 포스터.




1970,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저는 체제순응적 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조차 ‘말조심해야한다, 잡혀간다’며 조금이라도 위험한(?) 대화가 이어지는걸 두려워했고 나서지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세뇌는 지금까지도 늘 뒤에서나 궁시렁거리는 비겁자로 살게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대로 데모한번 해본적이 없고 글 한 줄 쓸 때도 자체검열을 몇 번씩이나 하는 새가슴이지만 그렇다고 옳고 그른것까지 모르는건 아닙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며 분노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 싶은 일들을 겪을 때는 강하게 반발하는 상상도 많이 해봤지만 언제나 말 잘듣는 학생, 직장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 아파트값이나 좀 오르고 자식들 잘되면 그만이지, 내가 뭐라고…. 그런데 요즘, 저는 자꾸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자꾸 눈물이 납니다. 습관화된 비겁함 때문에 웬만한 일들에는 고개를 돌렸는데 요즘은 시도때도없이 울컥해집니다. 문득, <미션>(1986년작, 롤랑 죠페 감독)의 두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그분들이라면 지금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18세기,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침략과 약탈에 피폐해지고 있는 남미의 어느 지역을 무대로 한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신부가 등장합니다. 약한 듯 보이지만 사랑이 넘치고 헌신적인 가브리엘 신부님(제레미 아이언스), 외모부터 범상치않은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신부님. 멘도자 신부는 악랄한 노예상이었으며 치정에 얽혀 친동생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가브리엔 신부는 그를 자신과 같은 길로 이끕니다. 멘도자 신부의 참회는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의미있게 본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멘도자 신부와 그렇게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멘도자 신부를 용서해주는 과라니족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용서를 하는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와 화합의 과정을 거치며 누가 누굴 선교하고 이끄는 주종 관계가 아닌 진정한 가족, 친구, 공동제로 신부님들과 과라니족은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영토 분계선에 따라 과라니족의 마을은 포루투갈 식민지로 편입되고, 선교회를 해체하겠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과라니족과 두 신부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저항할 것인가! 두 신부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멘도자 신부는 무장저항으로, 가브리엔 신부는 비폭력으로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합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 정의를 향한 길은 다르지 않을겁니다.



나는 저 상황이라면 어떤 길을 택할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지금까지 용기있는 누군가가 힘겹게 얻어놓은 중요한 가치들에 슬쩍 숟가락 하나 얹으며 살아왔기에 어떤 길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절망 속에서 아주 강렬한 희망을,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을 보고 있습니다. 광장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길입니다.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만 평화롭고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는 우리 국민들. 가브리엘식도, 멘도자식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식으로 정의를 외치는 모습은 감동이라는 단어로는 모자랍니다.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겁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서 타고 있었으니까요.

조휴정PD(KBS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