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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딩 파이낸스 2017] 관치금융 '인사분야' 가장 심각…"지주사 제 역할한다" 23% 그쳐

1부. 금융산업 지배구조를 다시 본다

-금융사 임원·민간금융硏 소장 설문





지난 3월 은행과 증권사들이 금융당국의 지원 아래 출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1주일 만에 가입자 수 66만명 돌파라는 기현상을 일으켰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직접 가입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자 금융사 간 경쟁이 촉발됐던 것. 하지만 실태는 가입금액 1만원을 밑도는 이른바 ‘깡통계좌’가 전체의 절반 이상이었다. 게다가 불완전판매 논란에 수익률 공시 오류까지 벌어지며 ISA는 이른바 실패한 금융상품으로 전락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ISA는 금융당국이 내세운 대표적 관치 금융상품”이라며 “금융당국은 성과는 자신들이 챙기고 책임은 금융사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CEO·임원 선임때 외부 입김 여전” 68%

10명중 1명만 “모든 것이 내부에서 결정”

자율성 살리려면 주주친화적 제도 시급



올해도 어김없이 드러난 ‘관치의 그림자’는 서울경제신문이 금융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관치의 영역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분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4.6%인 37명이 ‘인사’, 33.6%인 36명이 ‘영업 및 마케팅’, 19.6%인 21명이 ‘상품제작’이라고 답했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선임, 회사 주요 보직부장 선임 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68.4%인 52명이 ‘예전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답했다. ‘관치가 심각하다’고 답한 응답자를 합치면 전체의 74.9%가 관치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이 내부에서 결정된다’고 답한 금융계 임원은 전체의 11.8%에 그쳤다.

실제 올해 민간 금융사와 금융협회의 인사에는 쉴 새 없이 정부의 낙하산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회장이 은행장직을 겸하고 있는 KB금융의 경우 올 11월 은행장직이 분리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은행장으로 청와대 출신의 한 인사가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또 10월에는 손해보험협회 전무 자리에 금융감독원 출신 국장이 취임해 논란이 됐다. 생명보험협회는 이보다 앞서 올 8월 금융위원회 과장 출신을 전무로 임명했고 은행연합회는 관료 출신 인사를 2인자인 전무직에 선임해 비판 여론이 제기됐다.



영업과 마케팅 영역에 대한 관치의 수준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영업시간까지 개입할 태세였다. 지난해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지구상에 오후4시에 문을 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며 쓴소리를 하자 은행들은 영업시간 유연화 방안을 찾는다고 부산을 떨어야 했다. 영업점의 업무가 이미 상당 부분 모바일뱅크 등 비대면 거래로 옮겨가고 있는데 금융당국의 수장의 말 한마디에 은행 영업전략이 역행할 뻔했다는 얘기다.

또 금융지주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23.7%만이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융지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법과 제도상의 한계(39.7%)’ ‘CEO의 짧은 임기(37.2%)’와 함께 ‘과도한 정부의 개입(17.9%)’을 꼽았다. 각종 규제와 함께 금융당국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탓에 금융지주의 위상과 역할에 제약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일부 응답자는 가격에까지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답변을 할 정도로 ‘그림자 금융’은 심각했다. 금융당국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가격에 개입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그동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부정해왔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금융당국이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금융사 임원들 상당수의 의견이다. 실제로 대부업법 개정으로 법정 최고금리가 35% 수준에서 27.9%로 떨어진 후 카드론 금리가 대부업체 금리와 같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일자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체계에 대한 점검에 들어간 바 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카드론 수익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카드업계는 속사정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표적검사라는 씁쓸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치의 폐단을 차단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살리려면 주주친화적인 제도와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등 대다수 금융지주사가 상장사인 만큼 책임 있는 대주주들의 의사를 경영에 반영하고 주주총회 등을 통해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우리 금융계는 지주회사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문화가 전혀 정착하지 못했다”며 “금융당국이 은행장 인선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막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주주들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정부가 여전히 ‘은행장을 누구로 시켜라’라며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라며 “지배구조를 제대로 확립하려면 결국 주주총회의 권한을 바로 세우고 일반주주들이 목소리를 내고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동효·김보리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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