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0일 넘게 극장 공연이 펼쳐지던 나라였다. 1,000년 가까이 연극이 번성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명작은 적지만, 그리스의 문화와 풍습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특유의 것으로 발전시킨, 배경 전환을 위해 커튼을 사용하는 무대 방식을 최초로 활용하기도 한 주인공은 바로 ‘로마’다.
번성하던 로마 극장 예술은 권력의 개입 속에 점차 쇠퇴해갔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종교가 국가 권력으로 부상하고, 이들은 무대를 향한 무자비한 탄압을 쏟아낸다. 마임 극에 등장하는 성적 표현을 비롯해 많은 작품이 타락을 부추긴다는 게 큰 이유였지만, 배우가 쏟아내는 기독교 풍자가 교회 권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결국 398년 카르타고 평의회는 주일에 교회 대신 극장에 간 사람들을 파문(破門)하고 배우의 예배 참여를 금지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극장 공연을 즐기고 그 무대에 서는 자들을 공동체에서 배제해버린 셈이다. 물론 로마제국의 정치적 혼란과 몰락, 공연 자체의 질 저하라는 상황이 혼재되어 있지만, 권력의 극장 예술 말살 정책으로 로마에서 연극은 한동안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권력의 탄압 속에 스러져간 로마 연극 이야기는 그저 아주 먼 옛날의, 다른 나라 예술사가 아니다. 고대 로마의 ‘교회 권력’이 2016년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측근’으로, ‘카르타고 평의회의 성명’이 ‘블랙리스트’로 바뀌었을 뿐. ‘쓴 사람은 없는데 버젓이 존재하는’ 검은 명단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린 예술인에 대한 저열한 탄압이기 때문이다. 검은 의도로 작성된 검은 명단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정부 비판 메시지 작품을 만든 예술인을 추려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데 사용됐다. ‘돈’(지원금)을 미끼 삼아 표현의 자유를 길들일 수 있다는 얕은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60년 무대에 선 한 원로 배우는 이번 사태를 향해 “예술가를 정치 성향으로 구분하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4세기 예술사에 남은 부끄러운 탄압이 재현되고 있으니 ‘전근대’라는 표현이 틀릴 것도 없어 보인다. 교육·정치에 이어 문화제도마저 무너진 로마는 이후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연극을 흔히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거울이 비추는 모습이 싫다고 덧칠하고 깨뜨리면 제 모습이 추한지 아닌지 확인조차 못 하는 법이다. 희망찬 기운이 어느 때보다 간절한 정유년(丁酉年), 권력의 탄압을 물리치고 한결 단단해진 무대에서 너와 나의 이야기, 시대를 품은 주옥같은 명작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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