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소시민(小市民)’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사전에서는 ‘소시민’을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프리 부르주아’라는 말이 보여주듯 ‘소시민’은 우리 사회의 중산층을 일컫는 표현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소시민’ 역시 가진 것 없는 ‘흙수저’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한 시대다.
1월 12일 개봉하는 김병준 감독의 영화 ‘소시민’은 이처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착취당하면서도 ‘중산층’이라는 위치를 유지할 정도의 댓가는 받지 못하는 우리들의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를 한바탕 소동극으로 그려낸다.
평범한 직장인 구재필(한상천 분)은 아내와는 별거를 하며 이혼을 앞두고 있고, 직장에서는 정리해고 대상자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는 해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남들 몰래 회사에 들어가 장부를 조작할 것을 지시한다.
회사에 숨어들기 전 집에 돌아온 구재필은 별거했던 아내가 거실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한다. 구재필은 경찰에 아내가 살해당했다고 신고하지만 오히려 살인용의자가 되어 쫓기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도 그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장부를 빼내려고 한다.
‘소시민’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극도로 가속되고 있는 현재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별거중이었다지만 아내가 살해당했고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렸다는 것에 대한 해명보다도,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일단은 상사가 지시한 부정청탁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어차피 살인죄로 감옥에 가면 회사고 뭐고 끝나는 것이지만, 구재필에게 덮친 해고의 공포는 최소한의 이성적인 판단마저 마비시킨다.
그리고 이런 ‘구재필’의 소동극 뒤로는 일을 우선시해 가족을 등한시한 아버지의 그림자와 이혼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흔한 부부간의 갈등이 겹쳐진다. ‘소시민’은 이 씁쓸한 상황들을 통해 2017년 현재 ‘흙수저’ ‘소시민’들의 힘든 삶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시민’은 이 좋은 이야기를 장르와 성공적으로 결합시키지는 못한다. 해고와 아내가 살해당한 사건을 결합시키며 내달리는 이야기의 힘은 좋지만, 김병준 감독은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장르적인 리듬이나 분위기를 살려내지는 못한다. ‘동경의 타란티노’라 불린 사부(SABU) 감독의 질주하는 블랙 코미디에서 속도감을 뺀 느낌이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 회사에서 지시한 장부조작 대신 상사의 얼굴에 주먹을 호쾌하게 날리고 ‘사직서’를 당당하게 던지고 돌아서는 ‘구재필’의 모습은 이런 아쉬움을 날려버릴 정도로 통쾌하다.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결국 일개 부품으로 전락해버린 채 버려지는 한 남자, 아니 우리 흔하디 흔한 ‘흙수저’들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대변해주는 장면이었다. 1월 12일 개봉.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