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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 거장' 윤명로의 발자취를 엿보다

윤명로 개인전 '그때와 지금'

60~70년대의 초기작부터 10년 주기로 작품세계 선봬

윤명로 ‘바람 부는 날 MXV-410’, 2015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보드랍고 털이 고운 ‘고급’ 붓으로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아 동네 철물점에서 2,000원짜리 싸리빗을 사서 물감을 묻히고 캔버스에 휘둘렀다. 그리던 당시의 칼칼함이 살아있는 원로화가 윤명로(81)의 최근작 ‘바람 부는 날’이다. “이 짓도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고 내뱉을 때나 쓸 법한, 행동의 격을 낮춰 쓰는 ‘짓’을 연 날리는 도구인 얼레에 붙여 작품제목 ‘얼레짓’으로 썼던 그다. 무엇을 사용하고 뭐라 불리면 어떠랴. 바람에 나부끼는 연의 움직임처럼 자유로운 정신과 행위의 흔적은 그림에 고스란히 남았다.

한국 추상회화의 거목인 윤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 ‘윤명로, 그때와 지금’이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에서 18일 개막한다. 1층은 2010년 이후 제작된 최근작이고 2층은 2000년대의 ‘겸재 예찬’, 3층 1990년대 ‘익명의 땅’, 4층 1980년대 ‘얼레짓’ 순으로 마지막 5층은 60~70년대 초기작을 선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6층으로 가 시대순으로 내려오면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좀 더 극적이길 원한다면 1층부터 시간을 거슬러 오르길 권한다. 꽃을 피워올린 나무의 잎과 가지, 줄기를 더듬은 후 탄탄한 뿌리를 마주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바람이나 향기는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그림으로 시각화하는 게 추상입니다. 추상은 정신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고 내가 가진 정신은 팔레트이고, 컬러이고, 캔버스입니다.”

대략 10년 주기로 변화한 윤 화백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역발상’이다. 1960년에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유학한 그는 “4·19혁명 직후 우리나라에 실존주의가 물밀듯 들어왔는데 정작 미국에 가보니 실존주의는 없고 자본주의만 있더라”면서 “대학 4학년 때 국전(國展)에 출품해 특선을 받은 작품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소설에서 영감 얻은 ‘벽’이었는데, 예술에 상을 주고 위계를 둔다는 모순을 참을 수가 없어서 덕수궁 돌담에 전시를 했다”고 회고했다. 1960년대 초 그가 주도해 국전의 폐단에 저항한 ‘벽전(霹展)’은 한국 미술사의 주요 사건으로 꼽힌다.

출품작 중 가장 오래된 1956년 ‘무제’는 그의 작품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후 화가는 서정적인 추상으로 분류되는 앵포르멜로 돌아서, 유화 물감에 석고까지 섞어가며 재료 그 자체에 매달렸다. 끈적함이 손에 잡힐 듯한 그 질감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민의 무게가 느껴진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윤 화백이 1976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균열’ 시리즈. 도자기의 빙열처럼 화폭을 뒤덮은 자잘한 갈라짐은 숨 쉴 수 있는 틈, 즉 숨통이다. 허연 백지같은 작품의 가장자리에 시간이 스민 듯한 ‘균열’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작가는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의 유행을 마주하고 ‘집단개성’에 함몰되지 않고자 ‘얼레짓’으로 옮겨간다. 같은 제목의 연작이지만 머리칼을 정리하려다 외려 더 엉켜버린 듯한 날카로운 얼레짓과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같은 풍죽(風竹) 느낌의 좀 더 부드러운 얼레짓 등 다채롭다. “고인 물로 썩기 싫어서 때 되면 옷을 갈아입듯 그때그때 그림을 바꿨다”는 원로 작가는 지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열망한다고 했다. 3월5일까지 (02)736-1020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윤명로 ‘익명의 땅 91214’, 1991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윤명로 ‘얼레짓 86-801’ 1986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윤명로 ‘균열 80-320’ 1980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윤명로 ‘회화 M.15’ 1963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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