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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도의 톡톡 생활과학]자연을 베꼈다...생체 모사 기술 개발 활기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은 38억 년의 긴 세월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최적의 특성과 기능을 갖추었다. 오늘날 동식물은 자연이 만든 최고의 설계도라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모방하면 최고의 기술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른바 ‘생체모방기술’ 이다.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디자인적 요소나 생물체의 특성을 연구하고 모방하는 기술을 말한다.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한 뒤 이를 모방해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생체모방’이라는 용어를 처음 선보인 재닌 베이어스 박사는 “자연은 우리가 찾고 있는 해답을 이미 다 갖고 있다”며 “자연은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인류가 생체를 모방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고대 선사시대 동물들의 이빨을 보고 칼을 만드는 행위부터 생체 모방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붙였다 뗐다하는 벨크로, 일명 ‘찍찍이’는 산우엉 가시를 응용했다. ‘압축 벽걸이’는 바닷가 바위에 달라붙은 삿갓조개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대장내시경 장비는 몸을 구부리며 이동하는 자벌레의 생태를 보고 개발했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자연에서 배운 아이디어로 만든 기술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은 물총새가 사냥할 때 물방울이 잘 튀지 않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돼 터널을 지날 때 소음이 크게 줄었다. 과학자들에게 동물과 작은 곤충들은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도마뱀, 망둥이, 거미, 귀뚜라미, 바퀴벌레 등의 동물을 모사한 생체 모방 기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생물체의 외형은 물론 골격, 생체 메커니즘을 쏙 빼닮은 각국의 생체 모방 기술을 소개한다.

실패에 감은 인공 거미줄. 수술용 실이나 방탄 조끼 등에 두루 쓸 수 있다.




수술용 실이나 방탄조끼 등에 두루 쓸 수 있는 ‘인공 거미줄’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스웨덴 농업과학대, 중국 동화대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진은 거미줄 생산 기관인 ‘방적관’을 본뜬 장치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실제 거미줄과 유사한 인공 섬유를 만들었다. 이 인공 섬유는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 섬유에 비견할 정도의 강도와 탄성을 지녔다. 생체적합성도 뛰어나 수술용 실 등 의료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거미가 거미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거미줄 단백질의 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거미는 몸 안에 거미줄 단백질을 용액 상태로 가지고 있는데, 이 용액이 방적관으로 뿜어져 나오면 실 형태로 바뀐다. 방적관 내부의 산도(pH)가 점차 낮아지면서 단백질의 구조가 변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거미 방적관을 흉내 내 좁은 유리관을 만들고, 내부 산도가 pH7.5에서 pH 5.5로 변하도록 조절했다. 연구진은 1ℓ의 단백질로 인공 거미줄 1km를 생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지난 9일 자에 실렸다.

기존 OLED(왼쪽)와 반딧불이 모사 OLED(오른쪽). 서로 비교해보면 오른쪽이 훨씬 밝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이 반딧불이 발광기관 구조의 광학적 역할을 밝혀내고 이를 공학적으로 모사하는데 성공했다. 정기훈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발광 효율을 최대 61% 높인 반딧불이 모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개발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발광기관은 외피층, 발광세포층, 반사층으로 구성된다. 연구팀은 외피층에 마이크로 및 나노구조가 결합 된 계층적 구조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 계층적 구조가 발광 세포층에서 발생 되는 빛을 효과적으로 추출하면서 넓은 광 분포를 구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존 OLED는 발생한 빛이 내부에 갇혀 약 20%의 빛만 외부로 추출된다는 맹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반딧불이의 계층 구조를 OLED에 적용해 광 추출 효율을 최대 61%까지 향상 시켰다. 이번 연구는 나노 분야의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지난해 4월 5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가오리 를 모방해 만든 초소형 로봇. 무게 가 10g에 불과하며 청색광 자극으로 근육을 조종해서 움직인다.


지난해 7월 8일 ‘사이언스’ 표지는 가오리를 모방해 만든 초소형 ‘가오리 로봇’이 장식했다. 실제 가오리 크기의 10분의 1(무게 10g, 몸통 너비 16㎜)로 만든 이 로봇은 청색광(光) 자극으로 근육을 조종해 움직일 수 있다. 생김새와 수영하는 모습 모두 가오리를 그대로 빼닮은 이 로봇은 가오리의 근육 구조를 본떠 만들어졌다. 최정우 서강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하버드대 케빈 키트 파커 교수 등 연구진은 금으로 가오리와 똑같은 구조로 뼈대 구조를 만들고, 탄성 고무로 부드러운 피부를 만들었다. 여기에 쥐의 심장 근육 세포를 이용해 실제 가오리와 같은 근육 조직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심장 근육 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청색광을 쪼이면 근육이 순차적으로 수축하고 이완하며 가오리 로봇이 헤엄을 칠 수 있게 만들었다. 가오리 로봇의 수영 실력은 실제 가오리의 63% 수준으로, 지금까지 개발된 로봇 중에서는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

도마뱀 발바닥에서 영감을 얻은 스티키봇. 매끄러운 벽면을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마크 컷코스키 교수팀에서 개발한 ‘스티키봇’은 2006년 타임지에 ‘올해 최고의 발명품’ 44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울퉁불퉁한 벽뿐만 아니라 매끄러운 면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게코도마뱀(Gecko)에게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게코도마뱀의 발을 확대해보면 머리카락보다 500배 많은 털이 나 있고 이 끝이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이 털끝에 작용하는 힘을 통해 게코 도마뱀은 접착력을 얻는다. 스티키봇의 발바닥은 미세한 섬유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섬모의 끝부분은 한 방향 만을 보게끔 경사지게 처리됐다. 접지된 상태에서 경사면 방향으로 잡아당기면 마찰력이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유리벽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다. 게코 도마뱀 발바닥은 기존 접착제 대체소재 개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미국 연구진은 탄소나노튜브 털로 덮인 인공 게코테이프를 개발하기도 했다. 게코 테이프는 진공 환경에서 작업이 요구되는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를 옮길 때 효과적 활용도 가능하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게코 테이프를 거친 피부에 붙이는 의료용 패치나 극한 환경용 접착제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말뚝망둥이를 움직임을 모사한 ‘머디봇’. 꼬리의 힘과 2개의 다리를 이용해 20도 경사의 모래 언덕을 오를 수 있다.




조지아공대 카네기멜론대 공동 연구팀이 말뚝망둥이 모사 로봇 ‘머디봇(MuddyBot)’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꼬리의 힘과 2개의 다리를 활용해 20도 경사의 모래 언덕을 오를 수 있다. 망둥어는 3억6,000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류로 알려져 있다. 말뚝망둥이가 앞지느러미를 목발처럼 사용해 모래나 모래 경사 길을 지나다니고 장애물을 만나면 앞지느러미와 꼬리를 사용해 경사 난 길을 올라가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성과가 물과 육지에서 활동하는 양서류 로봇을 개발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 성과는 지난해 7월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문어처럼 흐물거리며 움직이는 옷토봇이 개발됐다. 이 옥토봇은 과산화수소를 내부로 주입하면 백금과 만나 가스를 발생시키는 원리로 작동한다.


문어처럼 흐물거리며 움직일 수 있는 소프트 로봇, 일명 ‘옥토봇‘이 개발됐다. 하버드대 ‘제니퍼 루이스연구소’ 연구진이 개발한 옥토봇은 배터리, 컴퓨터칩과 같은 전자부품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움직인다. 옥토봇은 기본적으로 공기압 방식의 튜브다. 작동 방식은 과산화수소를 내부로 주입하면 액체가 흘러 들어가 백금과 만나 가스를 발생시키는 원리다. 가스는 확장되면서 미이크로 유체 컨트롤러로 알려진 작은 칩을 통과한다. 통과된 가스가 촉수를 움직이게 만든다. 1㎖의 연료를 사용해 8분 정도 동작 가능하다.

국내 연구진이 소금쟁이가 물 위에서 도약하는 방법을 모방, 물 위에서 점프할 수 있는 초경량 로봇을 개발했다.


국내 연구진이 소금쟁이처럼 물 위에서 점프하는 초경량 로봇을 개발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의 김호영·조규진 교수 공동 연구팀은 소금쟁이가 물의 표면장력을 최대한 이용해 도약하는 방식을 활용한 ‘수상 도약 로봇’을 개발했다고 지난해 7월 31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소금쟁이는 물 위에서 뛰어오를 때 넓게 벌렸던 다리 4개를 가운데로 모으고서 위로 뛰어오른다. 연구팀은 이런 소금쟁이의 도약 특성을 연구해, 소금쟁이처럼 표면 장력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적으로 ‘점프’하는 로봇을 만들어냈다. 구동 장치에 가늘고 긴 다리 4개를 연결해 몸무게가 단 68㎎에 불과한 로봇을 구현했다. 연구팀은 이 로봇이 수면 아래로 발이 빠지지 않은 채 지상에서 뛰는 만큼 뛰어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빠른 속도로 파닥거리는 곤충의 날갯짓에는 자연의 신비가 숨어있다. 곤충은 전진비행과 제자리비행이 가능하고, 갑작스러운 바람에도 뛰어난 안정성을 보인다. 곤충은 빠른 날갯짓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 오히려 성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한국항공대 장조원 교수 연구팀이 제자리 비행에 능숙한 ‘박각시 나방’을 닮은 로봇 모델을 제작했다. 연구팀은 곤충 날개가 만들어내는 소용돌이가 비행 성능을 두 배 가까이 높인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장조원 교수는 “생체 모방형 차세대 드론과 차세대 무인기 날개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연구진은 ‘거미 귀뚜라미’에 주목했다. 몸통 길이의 60배 넘게 뛰는 도약 거리와 안정적인 공중 자세, 착륙 패턴 등에 숨은 비밀을 풀어 로봇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거미 귀뚜라미가 도약하는 거리를 사람 기준으로 계산하면 축구장 길이에 상당하는 91.4미터에 달한다. 연구진은 초당 400프레임을 기록하는 고속 비디오카메라 3대로 거미 귀뚜라미 도약 모습을 관찰했다. 촬영한 거미 귀뚜라미 동작은 컴퓨터로 옮겨져 몸통 각 요소와 다리가 도약과 착륙 중 어떻게 움직이는지 3차원(3D)모델링으로 변환된다. 모델링을 기초로 거미 귀뚜라미가 도약하는 동작을 모사하는 로봇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오랫동안 자연에 적응하면서 생존해온 동물들의 생체적인 특성이 로봇 개발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생체 모방 로봇은 실제 환경에서 놀라운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로봇 과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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