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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배의 수익, 마녀…윌리엄 핍스





1만원을 투자해 1억원을 벌었다면 수익률 백만%! 이런 수익률이 가능할까. 전례가 있다. 난파선의 보물을 건진 윌리엄 핍스(William Phips)에 투자한 사람들은 백만%가 넘는 배당을 받았다. 17세기판 로또에 진배없다. 만 36세 나이에 보물선 발굴에 성공한 핍스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막대한 부를 쌓고 장군 계급장을 달고 싸움터에도 나갔다. 식민지 매사추세츠의 총독 자리까지 꿰찼다. 인생 역전의 주인공인 핍스는 행복했을까.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삶을 살았다.

1651년 2월2일,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네쿠아셋(오늘날 메인주 울위치)에서 태어난 핍스는 가난과 불운에 시달리며 자랐다. 개척 농민이었던 아버지를 6살에 잃었다. 6남매를 데리고 재혼한 어머니의 새 남편도 가난해 핍스는 학교 근처에도 못 갔다. 일찍부터 직업을 찾던 핍스는 가계 점원을 거쳐 조선소에 도제공으로 들어갔다. 도제 수업을 마치고 상선 선원을 거쳐 자기 조선소를 세웠지만 운이 안 따랐다. 소형 보트 제작에서 벗어나 대형 선박을 지을 정도로 성장하던 무렵,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작업장과 건조 중이던 배가 모두 불탔다. 26세의 젊은 사업가 핍스는 모든 재산을 날렸다.

재기하기 위해 연안 상선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핍스는 ‘보물선’ 발굴에 매달렸다.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에 대한 정보는 사실이었다. 막대한 금과 은, 1641년 보물을 싣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침몰한 ‘콘셉시온호’를 찾기 위해 모험가들이 몰렸다. 보물선 침몰지역은 넓이가 130㎞에 이르는 거대한 산호초 지역. 산호초에 걸려 좌초, 침몰되는 선박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7년여 동안 핍스는 탐사 작업과 함께 투자자를 구하려 뛰어다녔다.

영국 국왕에게 발굴 보고서를 올려 선박까지 하사받았지만 결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발굴에 나선 지 7년째인 1687년, 핍스는 마침내 보물선 ‘콘셉시온호’를 찾아냈다. 보물 인양 수단은 자맥질. 핍스는 기력이 떨어져 더 이상 잠수가 불가능할 때까지 59일간 은(銀) 32톤, 금괴 11㎏ 등 보물을 건져냈다. 런던에서 핍스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핍스가 진상한 보물로 기분이 좋아진 국왕 제임스 2세는 기사 작위를 내렸다. 핍스는 포상금 1만1,000파운드를 받았다.



콥셉시온호의 보물 가운데 핍스와 선원, 국왕의 몫을 뺀 나머지 19만 파운드 가량의 보물은 항해 후원자들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분배됐다. 배당률 백만%. 영국인들은 너도나도 핍스처럼 성공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사가인 에드워드 첸슬러의 역저 ‘금융투기의 역사’에 따르면 핍스의 보물선 발굴 직후 런던에서 해저유물인양주식회사 설립 붐이 일었다. 주가도 뛰었다. 그러나 오래 못 갔다. 물가가 덩달아 뛰는 가운데 화폐개혁까지 맞물려 결국 공황이 발생했다. 초우량 종목인 동인도회사의 주가마저 200파운드에서 37파운드로 주저앉았다. 줄도산으로 1693년 140개였던 상장회사는 1697년 40개로 줄어들었다. 개인의 횡재가 대중적 환상을 낳고 투기와 경제공황으로 이어짐 셈이다.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된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의 해저 유물 인양회사들은 콘셉시온호을 찾으려 경쟁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핍스가 보물을 찾아낸지 291년이 지난 1978년에서야 미국인 버트 웨버가 비로소 보물을 찾아냈을 뿐이다. 웨버는 약 1억 달러에 이르는 금과 은을 건져냈으나 수익률은 핍스보다 훨씬 떨어졌다고 한다. 탐사선과 장비를 갖추는데 초기 투자가 컸기 때문이다.

다시 핍스로 돌아가자. 요즘 가치로 환산해 172만 파운드, 원화 약 25억원에 해당되는 큰 돈을 받은 핍스는 돈보다 큰 명예를 안았다. 영국군 소장에 임명돼 캐나다 퀘벡 전투에 참전하고 매사추세츠 식민지 총독으로도 임명됐다. 매사추세츠 총독 핍스는 1692년 ‘뉴잉글랜드 마녀사냥’의 재판장을 맡아 소녀 19명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한 1997년 개봉작 ‘크루서블(The Crucible)’에 나오는 총독이 바로 핍스다. 미국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은 뉴잉글랜드 마녀 재판 얘기를 전해 들으며 소설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의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 핍스의 행운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1695년 44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으니.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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