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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딸네 집, 아들네 집

“딸네 집 자리는 가시방석이라는데 이거라도 깔아야 덜 따끔대지.” 박완서의 소설 ‘살아 있는 날의 시작’에서 시집간 딸네 집으로 들어가는 어머니가 딸에게 그동안 쌈짓돈으로 모은 지폐 다발을 보여주며 한 말이다. 소설은 50대 직장 여성을 화자(話者)로 내세워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에피소드마다 여성 문제 등 당시의 사회문제 한 가지씩을 제기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이 1979~1980년이니까 이제는 40년 가까이 지났다.

그때는 그랬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 과정에서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일터로 나가고 있으나 가정에서는 남존여비 등 가부장적 가치관에 얽매인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가정에서만큼은 ‘아들 가진 세도’와 ‘딸 가진 죄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대의 분위기였다. 오죽하면 “아들 집에서는 밥을 얻어먹고 딸네 집에서는 물을 얻어먹는다”며 딸이 혹여 시댁의 눈총을 받지 않을까 조심한다는 속담이 남아 있을 정도다.

1990년대 후반 딸 많은 집으로 장가를 든 기자는 장모님에게 “아들 많은 집 사람은 골방에서, 딸 많은 집 사람은 싱크대에서 죽는다”는 자조 섞인 말씀을 들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장모님은 딸네들과 처남 내외를 위해 겨울이면 수백 포기의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가 자식들의 집집마다 택배로 붙이고는 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이 2명 이하로 떨어진 1984년을 기점으로 저출산이 본격화한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딸들의 위상이 달라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장년·노년층이 가장 많이 만나고 전화하는 대상이 큰딸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는 큰아들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36%가 ‘장녀’와 전화나 편지·인터넷 등으로 가장 많이 교류한다고 밝혔다. 노부모 봉양에 있어서도 ‘아들딸 상관없이 누구든지’라는 응답이 38.5%로 10년 사이 8%포인트 늘었다.



이 통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예전 같지 않은 딸의 높아진 위상을 일상에서 확인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1~2명뿐인 자녀가 모두 아들인 사람들은 다만 부러운 시선을 보낼 따름이다.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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