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이민국(USCIS)이 다음달 3일부터 H1-B를 15일 내 발급받을 수 있는 급행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이는 해외 인재를 다수 고용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H1-B를 “값싼 노동 프로그램”이라고 폄훼해왔다.
이 비자는 지난해 미 국무부의 연간 발급목표 건수(8만5,000건)를 훌쩍 웃도는 17만2,748건이나 발급됐을 정도로 수요가 많아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기업들의 인력 운용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직원의 근무 시작일보다 6개월 앞서 기업이 신청해야 하는 비자의 특성상 급행 서비스 중단은 곧 외국인 채용 및 고용유지 전략이 최장 오는 9월까지 불투명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H1-B 비자 압박은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위협한다”며 백악관의 자국민 우선 전략을 비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인 취업자 압박이 계속돼 중국이나 인도 출신 IT 기술자들을 데려올 수 없다면 미국이 세계적 기술전쟁에서 경쟁우위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미국에서 취업비자 취득이 어려워지면 이들 고급인재가 유럽과 아시아 IT 회사들로 향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나 일본·중국 등이 배터리 기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삼성이나 소니 등 아시아 기업들이 증강현실(AR) 기술을 앞당기는 데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IT 인재를 대규모로 배출하며 H1-B 비자를 독식하다시피 했던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정책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다. 인도는 H1-B 비자의 발급건수 제한 및 국가별 쿼터 적용 등 미 국무부의 구상이 현지 언론 등을 통해 흘러나온 후 나렌드라 모디 총리까지 나서 ‘반인도’ 비자 정책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뉴델리를 방문한 미국 하원의원 26명을 따로 만난 모디 총리는 “인도 IT 인력이 미국 경제에 많이 기여해왔다”고 강조하며 현행 비자 체제 방어에 나섰다. 인도 IT 업계를 대표하는 나스콤(인도 소프트웨어서비스협회) 역시 미국 정계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기 위해 지난해 44만달러를 이민과 비자 관련 로비자금으로 쓰는 등 전방위 대응을 하고 있다.
한편 앞서 실리콘밸리의 거센 반발을 샀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 수정안은 대통령 서명 하루 만에 또다시 법정 공방에 휘말리게 됐다. 이날 미 하와이주는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내놓은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중지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으며 효력발생일인 16일 이전에 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1차 행정명령에 대해 소송전을 벌였던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워싱턴 등도 하와이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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