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한 경제학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 여론에 불을 지폈다. ‘나는 왜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제학자로서 양심을 걸고 쓴 고발문이다. 이 글에서 그는 기초적인 비용-편익 분석도 없이 22조원 이상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고 공정이 30% 이상 진전됐으니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찬성 측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제학에 따르면 토목공사에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은 무슨 수를 쓰든 회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매몰비용에 해당한다. 매몰비용은 얼마가 되든 잊어버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게 교과서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론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글이 논란을 지폈으나 4대강 사업은 그대로 진행됐고, 그에 앞서 새만금 사업도 같은 논리로 강행됐다. 이른바 정부가 매몰비용에 연연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더 큰 비용을 초래하는 것을 이르는 ‘콩코드의 오류’가 거듭 발생한 것이다. 이를 명명하는 말까지 있다는 것은 이 같은 사례가 숱하게, 또 어느 나라에나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가만있자.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하지 않는가. 그런데 콩코드의 오류 속 사례들을 보면 인간은 오히려 작은 손실을 피하기 위해 큰 손실을 감수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실제 우리 주변에는 계산기처럼 손익을 산출해 그에 맞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콘)보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인간(휴먼)이 훨씬 많다.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 등 숱한 주류경제학의 교과서를 쓴 이 교수가 그의 저서 ‘인간의 경제학’을 통해 ‘행태경제학’을 소개하려는 이유다. 주류 경제학이 이콘의 학문이라면 100년도 안 된 신생 분야인 행태경제학은 주먹구구식 원칙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휴먼의 이야기다.
전제를 달리하면 인간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법칙도 달라진다. 폭탄세일 문구 아래 1인당 5개까지만 구입이 가능하다고 적는 순간 상당수 소비자들은 1개만 사러 갔다가 5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이른바 제시된 숫자를 기준점으로 삼는 인간 심리를 이용한 ‘닻내림효과’다.
2014년의 연말정산 대란을 기억하는가. 세법 개정의 여파로 많은 납세자들이 세금을 돌려받기는커녕 추가로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납세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낸 후 돌려받든, 적게 낸 후 더 내든 결과적으로 내는 세금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전자는 이득으로 인식하고 후자는 손실 발생으로 인식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틀로 상황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태가 달라진다는 틀짜기효과를 정부가 간과한 예다.
이 책에는 우리의 현실과 달리 이미 행태경제학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정책으로 성공을 거둔 해외 사례들이 나와 있다.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내각 산하기관으로 행동분석팀(BIT)을 출범, 정책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예산을 절감하는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세금 납부를 독려하는 우편에 “대다수의 납세자들이 기한 내에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문구를 넣은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를 통해 체납자 상당수가 세금을 냈다. BIT는 유사한 방법으로 더 많은 기부금을 이끌어냈다. 오바마 행정부도 이를 벤치마크했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내려 사회·행태과학팀(SBST)을 공식기구로 창설했고 행태경제학의 통찰을 정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정책에 행태경제학을 활용하는 나라가 136개국에 이른다.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나와 세계’에서 사회과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과 달리 세심하게 통제되는 실험실 실험처럼 엄격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해 불쌍하다고 지적했다. 지구본을 자르듯 대륙을 잘라 위도와 기후, 토질 등의 조건을 마음대로 통제하며 실험할 수 있다면 사회과학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푸념이다. 주류 경제학은 그간 실험실에 갇혀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을 상정하고 실험했다. 사회과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행태경제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제학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행태경제학이라는 미지의 대륙으로 인도하는 안내서’ 역할을 하는 이 책은 독자들을 실험실 밖 경제학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행태경제학을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또 다른 행태경제학 입문서인 ‘넛지(Nudge)’, 행태경제학의 첫 장을 연 리처드 세일러의 ‘승자의 저주’를 읽어 볼만하다. 이밖에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이 왜 비싼가’ 등 실생활에서 느끼는 의문을 풀어주는 ‘팝콘과 아이패드’ 역시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이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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