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문 자체로 ‘국민의 알 권리’ 적극 실현
국민에 무게중심, 헌법수호 의지 드러내
마지막까지 ‘국론 분열’ 치유 메시지 전달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지금껏 헌법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일 뿐 국민들에게는 생활과 다소 동떨어져 있는 어려운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심판 결정문을 낭독한 21분 동안 헌법의 가치는 국민들에게 다가가 생생하게 자리 잡게 됐다. 결정문 자체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인 ‘국민의 알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한 결과이기도 했다.
12일 탄핵 결정문을 분석한 헌법학자들은 이번 결정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재확인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결정은 헌법 1조 1항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 탄핵을 결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결정문 곳곳에서 헌법의 가치가 발견된다. 헌재는 탄핵심판 선고를 시작하기 전부터 ‘헌법의 가치’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이 대행은 본격적인 선고에 앞서 탄핵심판의 진행과정을 설명하면서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을 포함해 어떠한 국가기관이라도 헌법 위에 있을 수 없고 헌법을 있게 한 근원은 국민이라는 얘기다. 법치주의 정신과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대행은 이어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 가야 할 가치”라고 다시 한 번 헌법의 가치를 강조하며 본격적인 선고를 시작했고 헌법적 가치는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며 주문을 선고할 때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한 사실을 위헌·위법 행위로 판단했다. 또 이에 따라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헌법재판관 8명은 대통령의 이러한 중대한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크다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재판관들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했다. 이는 헌법수호 의지와 헌법의 가치를 있게 한 ‘국민’에 무게중심을 둔 결정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법률 위반보다 헌법 위반 사항만을 철저하게 다루며 헌법적 가치를 그대로 담아냈다”며 “헌법에 준거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헌재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헌재는 마지막까지 헌법 가치를 앞세우며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상처인 ‘국론 분열’이 치유되기를 희망했다. 선고를 마치기 전 이 대행은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 의견을 묵묵히 읽어 나갔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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