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 이어 대선정국에서 후보 간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정당 간 대립과 감정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새로 등장할 대통령은 북핵 문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 한미 정상회담 등의 외교·국방 문제는 물론 경기 회복, 청년실업 및 노인복지 문제 해결, 사회적 양극화 해소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도 준비기간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지 이러한 문제의 대처는 국민의 지지와 국회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은 협력과 공생으로 국가적 난제를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이러한 요구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 즉 우리 정치는 국회 소수정당의 권한을 강화해 입법 과정이 지체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성급하게 입법을 추진하게 하는 동기를 동시에 부여하고 있어 문제다. 국회선진화법과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런가.
먼저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당의 의사 진행 방해 발언, 소위 필리버스터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출석의원 5분의3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우리 국회의 입법 과정이 다수당의 힘에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국회의장의 법률안 직권상정 권한의 발동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상황이 아닌 경우 교섭단체대표가 ‘합의’한 경우로 못 박고 있다. 즉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은 사실상 여야 간 합의가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게 됐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소수당의 의견을 존중하게 해 입법 과정에서 사전적으로 여야 정당지도부 간의 협의를 강제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여당 혹은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법률안을 통과시키려는 발상 자체를 좌절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이 단기적으로 개정될 수 없다고 본다면 현재 제20대 국회에서 과반 이상 다수 의석을 점한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은 대선 이후에도 여당의 정책결정력을 약화시킬 것이 거의 분명하다.
한편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본원적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공약을 조급하게 입법화하게 하려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임기 2년 혹은 3년이 지나면서 사실상 레임덕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이러한 전례를 잘 알고 있는 신임 대통령은 임기 중반에 이르기 전 가시적인 입법 성과를 만들어내 자신의 업적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중점 정책 추진 사항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여당 지도부를 압박하게 된다. 그 결과 여당 지도부가 야당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대통령 공약사항의 입법을 국회에서 조속히 추진하려고 하면 대통령과 야당, 국회 여야 간의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여당의 정책결정력을 약화시키는 국회선진화법과 대통령의 조급한 입법 시도를 조장하는 5년 단임제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대통령과 야당은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고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협력에 대한 더욱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더해 오는 5월9일 누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든지 신임 대통령은 과반 이상 다수당 부재의 여소야대에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국회 및 야당과의 협력으로 국정을 이끌어간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이는 단지 현재 여당이 다수당이 될 수 없다는 산술적 결과에서 나온 결론만은 아니다. 설령 여당이 다수당이라고 해도 야당과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합의를 통한 국정 진행이 필수적이라는 점은 박근혜 정부의 몰락이 가져다준 매우 귀중한 시대적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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