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인 4월 26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배정남이다. 이번 영화 ‘보안관’의 홍보 차 찾은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진~한 부산 사투리와 시종 솔직 유쾌한 입담이 대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MC들(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규현)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배정남에 빠져들었다. 그간 ‘라디오스타’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던 ‘예능 원석’이 또 하나 탄생한 것이다.
단순히 웃음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매 문장마다 묻어나는 계산 없는 진솔함이 매력이었다. 왠지 ‘서울말’을 쓰면 진짜 자신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며 토박이 사투리를 고수하는 이 부산 사나이가 요즘 시기에 새삼 신선하게 다가온다. ‘라스 효과’ 덕에 추가로 잡힌 인터뷰 자리는 배정남의 유쾌한 언변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고, 산전수전 다 겪어 온 인생사부터 ‘행님들’에 대한 의리까지 늘어놓은 배정남은 ‘인복’을 부르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 ‘라디오 스타’ 출연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행님들(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덕분이지예. 제가 복이 있는가 보네예. 사실은 제가 아니라 ‘보안관’을 (검색어) 1위로 올리고 싶었는데 괜히 미안하더라고예. 처음에는 벤치 멤버로 앉아 있다가 갑자기 공격수로 출전하게 된 거 아입니꺼. 그래도 ‘보안관’이 개봉하고서 한국 영화중에 1위가 돼서 신이 납니다. 요즘 홍보 하러 갈 때도 재미있습니다.
- ‘라스’ 녹화 직전에 ‘보안관’ 멤버들끼리 작전회의도 했다던데
행님들이 ‘긴장하지마’라면서 청심환까지 사서 주시더라고예. 처음에 진~짜 긴장했어요. 다 물어뜯길까봐.(웃음) 그래도 우리팀 4명에 4대 4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 생각을 하면서부터 제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생각이 많아지면 더 말이 안 나온다캐서 그냥 생각 없이 저를 드러냈죠.
- 원래 입담이 좋았던 것 같은데 예전에는 카리스마 이미지를 고수하지 않았나.
예전에는 신비주의가 있었죠. 그 때는 제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산전수전을 겪어보니 그게 필요가 없겠더라고예. 요즘 누가 ‘신비주의’ 합니까. 주변에서도 ‘네 모습 그대로 보여줘라’ 카더라고예. 8년 전에 ‘무한도전’에도 나간 적이 있는데, 그 땐 망가지기를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신비주의가 전혀 필요 없다고 느끼고서 이렇게 하니까 훨씬 편하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이런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예능에서나 인터뷰 자리에서나 이렇게 토박이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배우는 처음 만난다.
사투리를 안 쓰고 억지로 서울말을 쓰려하면 진짜 제 모습이 안 나와요. 생각이 걸러서 나오니까. 다른 사람 같이 보이는 게 싫더라고예. 촌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제가 거짓, 가식을 싫어해요. 그리고 저 같은 놈 하나 있어야죠. 다른 분들은 ‘아 이런 놈도 있네’, ‘신기한 놈이네’ 카더라고요. SNS랑 카톡으로도 사투리로 글을 쓰는데 글로도 음성지원 된다카고요. 그래도 연기할 때 서울말이 필요하면 100%는 안 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지켜봐 주이소.
- ‘보안관’ 촬영지가 부산의 기장이었다. 고향에서 촬영해 더욱 반가웠을 것 같다.
홈타운이니까 모든 게 다 반가웠죠. 구석구석 숨은 맛집도 제가 다 데리고 다니고 편안했죠. 저희가 쉴 때 낚시도 많이 했거든예. 바닷가에서 낚시랑 태닝이랑 같이 하느라 팬티 차림으로 다니기도 했어요. 행님들이 편하게 해주셨으니 그렇게 장난도 치고 즐겁게 촬영 할 수 있었죠. 맨 처음부터 그랬으면 돌아이죠.(웃음) 이번에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조금씩 시작해야죠. 이후에 또 인생 캐릭터도 만날 수 있고. 나중에 천천히 보여드릴게요.
- 극 중 ‘춘모’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너무 좋아서 미팅 때 바로 캐스팅됐다는 일화가 있다.
(강)동원이 형이 한강 피크닉에서 밥 먹는 자리라고 해서 나갔는데 제작사 대표님과 처음 만나게 됐죠. 저는 ‘보안관’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평소대로 행동했는데 춘모 역할과 너무 딱 어울린다 카더라고요. 저는 그 대표님이 사기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다음 날 연락이 오더니 오디션을 보자고 하더라고요. 동원이 형도 ‘잘 해보자’고 하면서 오디션 전에 리딩 합도 맞춰줬어요. 도움이 정말 많이 되더라고요. 자신감도 생기고. 그 때 감독님도 만족하셔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 강동원과는 데뷔 초기부터 오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사람이 참 인연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15년 전에 제가 처음 모델 시작할 때 동원 형이랑 같은 회사였어요. 둘 다 서울에 집이 없어서 같이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힘들게 살았죠. 그러다 형이 먼저 잘 됐고, 모델 초반에 일이 없었을 때는 여욱환 형이랑 동원이 형 스타일리스트 일을 같이 했어요. 동원 형이 주위 사람을 그렇게 잘 챙겨요. 이번에 콜드 플레이 콘서트 티켓도 동원 형이 다 사서 주변에 돌린 거예요. 술값 밥값도 항상 다 계산하고. 제가 연기 시작하고서도 조언을 많이 해줘요.
-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바심가지는 성격이 아닌 것 같은데
최근에는 조바심 그런 게 아예 없습니더. 악플도 잘 안 봐요. 앉아서 초조해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는 스트레스가 있어도 흘려보내는 타입 이에요. 어릴 때 아픔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가 봐요. 제가 조바심 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잘 되면 좋죠. 모델 생활 할 때는 한 때 잘 나간 적도 있었는데, 사기꾼도 만나보고 힘들게 산적도 있었어요. 그 때 행님, 누나들이 많이 챙겨줬어요. 이제는 조금씩 내공을 쌓으면서 천천히 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먼저 저 자신을 열어요. 처음 서울 올라오고서 사회생활 하다가 사기도 많이 당해봐서 이젠 가식이 보여요. 아픔을 겪다 보니까 사람이 단단해지더라고요. 제가 진실로 다가가니까 행님들도 예뻐해 주세요. 이번 작품에서도 행님들을 완전 잘 만난 것 같아요.
- 과거엔 모델 일과 쇼핑몰도 병행했는데, 이제는 주로 배우로서 활동할 계획인가?
지금은 일단 연기에 집중하려고예. 이번에 진짜 많이 배웠어요. 선배님들이 현장에서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이 는 것 같아요. 그게 저는 고맙죠. 힘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제가 긴장할까봐 중요한 장면에서는 일부러 말 안 하고 촬영에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
- 그간의 작품 중에 제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출품한 단편 ‘가면무도회’(2013, 감독 안진우)가 인상적이다.
한동안 단편 영화도 많이 찍었죠. ‘가면무도회’에서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과 주유소를 그만두고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일하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했는데, 빨간색 망사스타킹도 신고 퇴폐적인 느낌의 여장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일 크게 변신한 것 같아요. 당시에는 모델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저인 걸 몰라봐서 오히려 좋았죠. 이후로는 못할 역할이 없겠더라고요. 그 역할을 해보니까 춘모 역할은 껌이더라고요.(웃음)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을 것 같다.
멜로도 해보고 싶고 사극, 스릴러 등 할 수 있는 한 다양하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휴먼 실화나 감동적인 드라마를 즐겨 봐요. 공포는 꿈에 나올까봐 잘 못 봅니다.
- 현재 30대 배우로서의 삶,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이제 시작이지예. ‘보안관’으로 시작해서 모델 때 그 느낌으로 조금씩 욕심 안 내고 천천히 가고 싶어요. 30대가 되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더 좋은 거 같아요. 모델 처음 했을 때 그 마음가짐을 지금도 가져요. 그 때 고생한 걸 되새기면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한 방에 뜨는 건 싫어합니더.
한편 배정남이 출연한 영화 ‘보안관’은 부산 기장을 무대로,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전직 형사가 서울에서 내려온 성공한 사업가를 홀로 마약사범으로 의심하며 벌어지는 로컬수사극. 지난 3일 개봉해 현재 전국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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