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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공정 하도급 '갑질' 사라지나

정양호 조달청장





최근 국내의 한 주류제조업체가 영업 직원에게 ‘판매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퇴사하겠다’는 각서를 강요했다는 보도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청소용역업체에게 상품권 구매를 강요하고 매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일련의 사건들은 은연 중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갑을(甲乙) 문화’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본다.

갑을관계의 청산은 우리나라가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도 대단히 중요하다. 과거 우리는 전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고, 위기도 극복했다. 현재 세계경제는 불안정하고, 경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을 쥐어짜는 식으로는 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갑을이 주종(主從)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가 되고 쥐어짜기가 아닌 제값주기가 되어야 진정한 협력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래야 경제 생태계에 신뢰도 쌓일 수 있다. 갑을 문화의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정부에서는 갑을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고질적인 갑을관계 분야에서의 각종 불공정행위와 갑질 근절을 추진하고 있다. 원청 및 하청업체의 근로자에게 임금체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개선을 주요 공약사항으로 강조하고 있다. 117조원 규모에 달하는 공공조달시장도 갑을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도급자에 대한 이면계약 요구, 일방적 단가 인하 등 원도급자의 하도급자에 대한 불공정한 갑질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하도급자 역시 건설기계 대여업자, 건설자재 납품업자, 현장 근로자 등에게 연쇄적인 ‘갑의 행태’를 보이게 된다.

조달청에서는 하도급 계약 과정의 부당거래를 차단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13년 12월부터 ‘하도급지킴이’라는 전자시스템을 운영중이다. 그동안 하도급 관리를 수기로 처리하다 보니 이면계약, 어음결제, 정산지연 등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웠다. 하도급지킴이는 하도급 계약체결, 대금 지급 등 과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하고 이를 발주기관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해 불공정 행위를 줄일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하도급지킴이를 통해 지급 된 금액은 발주기관 지급액 기준으로 8조7,000억원에 달한다.



하도급지킴이 이용을 통해 ‘발주처→원도급자→하도급자→현장근로자’로 이어지는 관행화된 ‘갑을 구조’의 건설현장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광주시 소재 공사현장의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발주처에서 온라인으로 공사대급지급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원도급자가 오히려 하도급업체에게 대금지급 서류를 준비해달라고 서둘러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변화된 현장분위기를 귀띔했다.

그러나 하도급지킴이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 하도급지킴이 이용은 늘고 있지만, 나라장터에서 체결되는 5억원 이상 공사계약중 실제 하도급지킴이를 이용하는 계약은 16%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2015년 12월 전자조달법에 하도급관리시스템에 대한 이용 근거를 마련,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전자시스템이 아니라 수기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실제 공공기관 등에서 하도급지킴이 이용이 저조한 실정이다.

하도급지킴이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최근 조달청은 한국환경공단과 하도급지킴이 이용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도급지킴이의 적극적 이용과 시스템 개선 등을 위한 것이다. 앞으로 여러 발주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 하도급지킴이 이용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나갈 예정이다. 하도급지킴이를 통해 하도급계약에서부터 대금지급까지의 과정이 투명하게 처리되어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우리사회의 ‘갑질’ 문화를 없애는 청신호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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