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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4차 산업혁명, 실체인가 허구인가

김명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전 환경부 장관

4차 산업혁명 '이미 온 미래'인데

연구개발 정책은 과거에 머물러

민관협력 4중 나선형 모델 전환

행정체제 효율화로 선제 대응을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이 촉발한 4차 산업혁명 논의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한바탕 신드롬을 낳았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을 다룬 기사는 지난해 3월 440여건에서 올해 4월까지 4,300여건으로 뛰어올랐고 여전히 부지기수의 포럼이 열리고 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자동완성 단어를 보면 ‘살아남기’ ‘불확실한 미래’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 등이 상위에 랭크돼 있다. 정부는 곧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4차 산업혁명 대응 범부처 종합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역사에서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1884년 아널드 토인비가 그의 유고 ‘영국의 18세기 산업혁명 강의’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 1차·2차 산업혁명은 그 과정이 다 진행되고 나서 한참 뒤에 정의·도입됐다. 그러나 3차부터는 ‘정보혁명’이나 ‘네트워크 혁명’과 맞물려 있었으되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를 맞은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외로 개념과 용어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1940년대에 이미 등장한 유행어다’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 ‘한국에서만 왜 이렇게 뜨고 있느냐’ 등이 그것이다.

지난 5월 과총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과학기술계 인식’ 조사를 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인 2,350명 가운데 89%가 ‘현재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요 정책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설문’에서는 ‘과학기술혁신(ST&I)과 사회 발전의 역동성을 살리는 바람직한 정책’이라는 응답이 43%, ‘보다 구체적인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1%, ‘글로벌 차원의 추이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20%로 나타났다. 이 결과의 함의를 짚어본다면 혁명은 진행형이므로 정책 우선순위를 도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최근 국내외의 기술혁신 양상은 일찍이 유례없는 지수적(exponential) 변화임에 틀림없다. 현장은 이렇듯 요동치고 있는데 연구개발(R&D)과 기술이전의 규제와 제도는 옛날에 머물러 있다. R&D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감사제도와 그 밑에 깔린 불신은 과학기술계의 자율성과 창의성·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2016년 국가 과학기술혁신 역량평가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5위로 상위권이다. 들여다보면 R&D 투자 부문이 2위이나 새로운 문화에 대한 태도는 26위, 과학교육은 19위 등 하위권이다. R&D의 기본 토양이 나쁘다는 뜻이다.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효율화도 과제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이 한 부처에 엮여 있는 것은 둘 사이의 컨버전스가 요체인 융합혁신 상황에서 강점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한 분야이면서도 성격이 완연히 다른 정보통신과 동거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과학기술 거버넌스(관리체계)가 약화됐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를 불식하고 시너지를 거두는 것이 풀어야 할 과제다. 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 활성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혁신의 선형 모델에서 탈피해 이른바 4중(quadruple) 나선형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학연관과 시민사회가 과학기술 활동의 기획부터 개발 보급까지 한데 연계하는 융합적인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신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하는 만성적 위기 국면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타당성에 관한 학문적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적 대응이다. ‘이미 와 있는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정책적 의지와 그에 대한 컨센서스 형성이 기반이 돼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프런티어 개척에 나설 수 있도록 반전을 이룰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과학기술혁신 정책에 거는 기대가 더 크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를 맞아 우리의 과학기술혁신 역량에 대한 철저한 강점·약점·기회· 위협(SWOT) 분석으로 강점을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 리스크를 기회로 만드는 정책 설계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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