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전략회의를 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여기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라는 말의 속뜻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겠다는 것이고 ‘전략적 유연성’의 타깃 역시 중국이다. 종합하자면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세계전략을 세웠고 주한미군에게 중국 견제와 미중 분쟁시 기동군 역할을 맡기려 하는데 한국이 이에 동의한다는 것이 이 성명의 핵심이다. 한국은 이때부터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사실상 참여하게 된 것으로 봐야 한다.
2009년 집권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라는 이름을 붙여 대외정책의 주 무대를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겠다고 천명하고 중국 포위 전략을 구체화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동맹국을 적극 활용했다. 2014년 사실상 일본의 보통국가화 전략을 지지해 무력 증강과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용인한다. 한미 동맹 강화에도 신경을 쓰면서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체제를 구축해 중국을 포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북한의 핵 질주를 막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한미일 군사협력을 통한 중국 봉쇄였다. 그 사이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놀랍게 고도화시켰고 한미는 결국 사드 배치를 단행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지난 10년 치 정치적 배경이다. 사드는 북핵 위험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배치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이어진 미중 패권 다툼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 배치 결정 후 악화된 한중 관계 또한 구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수교 이후 25년 동안 양국은 경제적 협력은 중시하면서도 정치·안보 측면의 갈등 요인이 누적되는 것은 애써 외면해왔다. 생산 면에서는 자본·기술·노동을 서로 보완하는 분업 구조가 중요했고 소비 측면에서도 한국은 중국의 거대 시장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정치적 갈등이 폭발하자 그간 쌓아온 경제협력 구조까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과연 중국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몰렸다. 한때는 독일 폭스바겐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자동차 기업으로 꼽힌 현대·기아차다.
현대·기아차는 구조적 관점에서 이번 판매 급감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 첫째, 사드 갈등은 양국 중 한 나라의 일방적인 양보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고 오랜 시간 관리해나가야 할 안보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만에 하나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한중 관계와 중국 소비자의 감정은 단기간에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 중국 사업의 갈 길은 분명하다. 어려움을 버티면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 현지 기업보다 더 현지화된 기업이 되려는 노력 외에는 출구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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