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는 국제 사회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큰 타격을 입지 않는 비결은 북한 경제의 체질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저스틴 헤이스팅스 호주 시드니대 수석연구원은 25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글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수많은 북한과 중국의 사업가들을 만나고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와 현장을 방문한 후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헤이스팅스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국제 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평양에는 건축 붐이 일고 있으며, 식품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무기 판매, 마약 밀매, 해킹 범죄 등으로 외화를 확보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로 북한 경제의 체질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헤이스팅스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은 더는 사회주의 경제가 아니다. 민간 부문의 활발한 비공식 경제가 주도하는 시장 중심 국가로 변신했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이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제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은 자영업과 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곳곳에 생겨난 ‘장마당’에서는 주민들이 생산한 생필품과 식량, 중국과 한국에서 수입한 공산품 등이 판매된다. 사업가들은 아직 사기업이 금지된다는 점을 고려해 그들의 사업체를 국영기업으로 등록한다. 많은 운송업체가 민간기업으로서 운영되지만, 공식적으로는 국영기업이다.
이러한 시장경제에는 북한 공무원은 물론 군부 등 각계각층이 개입한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사업에 대한 보호막을 얻기 위해 한 북한 군부 고위층에 10만 달러를 건넨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결과 북한은 거대한 먹이사슬로 변했다. 사회주의 통제경제라면 상층부가 무너질 때 경제 전체가 무너질 수 있지만, 북한은 더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다. ‘돈의 맛’을 알게 된 북한 주민들이 창의력과 실용주의, 인내심을 결합해 어떠한 장애물이라도 극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엔의 경제제재로 철광석, 해산물, 의류 등의 수출이 금지됐지만, 이는 소용없는 짓이다. 이미 북한의 대외 무역은 온갖 밀수 루트를 개발한 민간 부문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제품, 기계 부품, 사치품 등 각종 물품도 이러한 루트로 수입된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북한과의 접경도시인 중국 단둥(丹東)을 거쳐 교역되는 물품의 70%가 밀수를 통해 거래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제제재나 밀수 단속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불황을 겪은 적은 없다고 전한다.
헤이스팅스 연구원은 “북한 경제가 번창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제재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경의 완전한 봉쇄가 북한을 무릎 꿇게 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 실패로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손샛별인턴기자 setj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