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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동양화가 이왈종] "김홍도·신윤복이 21세기 살았다면 씨름판 대신 골프 그렸을 것"

골프 치다보면 인성 다 드러나

이보다 더 해학적인 소재 없어

핀크스 골프장 벽화 인연으로

2005년부터 골프 그림 그려

교수 던지고 제주 정착 27년

그림 그리다가 죽는 게 소원

/사진=권욱기자




제주 SK핀크스골프장 클럽하우스 내 연회장은 사람의 이름을 딴 3개의 작은 방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곳 클럽하우스를 비롯해 바로 옆 포도호텔과 바람·물·돌 박물관 등을 설계한 재일교포 출신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1937~2011)의 ‘이타미룸’이요, 다른 하나는 전 세계 170여개 명문 골프 코스를 설계하고 마지막 역작으로 핀크스 코스를 설계한 시어도어 로빈슨(1923~2008)의 ‘로빈슨룸’이다. 그리고 가장 전망 좋은 오른쪽 끝 방이 ‘왈종룸’. 클럽하우스 프런트의 뒤쪽 벽 전체를 차지한 가로 6m, 세로 2m 이상 1,000호짜리 대형 그림 ‘제주생활의 중도’를 계기로 마련된 화가 이왈종(72)의 방이다. 개장 당시 그림을 건네받은 김홍주 전 핀크스골프장 회장이 이왈종에게 명예회원권과 골프채를 선물했다. 이 인연으로 골프에 입문해 급기야 ‘골프 그림’으로 대중적 인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 이왈종 화백을 지난 11일 그 ‘왈종룸’에서 만났다. 70대의 고령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탄탄한 몸은 매주 월·목요일, 적어도 주 1회 이상 골프를 친 덕이다. 직접 물을 들인 매화색 붉은 바지 뒷주머니 쪽에는 이왈종 작가사인의 고유기호(∞)를 활용한 ‘888’을 새겼다. 팔팔한 청춘이다.

연둣빛 잎사귀 빽빽한 나무, 꽃잎 흐드러진 매화와 탐스로운 동백나무, 그 사이사이로 뛰노는 강아지, 하늘을 나는 새, 만선의 고깃배, 집과 자동차 등이 파스텔톤 색감의 아기자기한 화폭 곳곳을 채운다. 혼자 텔레비전 보는 사람부터 벌거벗고 뒤엉킨 남녀 등 인간 군상이 펼쳐지지만 단연 골프 치는 사람들이 돋보인다.

“1999년에 핀크스 벽화를 그린 걸 계기로 골프에 입문했으니 시작이 늦은 편이죠. 머리 올리는 날부터 완전히 깨졌어요. 밥도 못 먹는 환쟁이(화가)가 골프를 쳐서 되겠느냐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어느새 골프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골프 치면서 먹고사는 방법 없나’를 궁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2005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였죠.”

그에게 골프는 인생의 축약본이다. 특히 ‘내기 골프’를 하다 보면 사람의 인간성이 바닥까지 드러나기 마련이다. “공이 벙커에 빠져 열 받은 사람 옆에서 그걸 5개, 10개 세며 약 올리는 사람이 있죠. 그 바람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도 있고요. 골프를 치다 보면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인성이 다 보입니다. 이보다 더 해학적인 그림 소재가 어딨겠습니까?”

김홍도나 신윤복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씨름판 춤 구경, 개울가에서 멱 감고 그네 타는 여인 대신 골프를 그렸을지 모를 일이다. 쉽고 친근하게 보이는 그림이지만 이왈종의 작품에는 전통 동양화의 근간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표현된다. 사물의 크기에 따른 비례 등을 무시하고 원근법을 깨뜨린 화면이 그렇다. 혼자 방 안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사내의 모습은 산속 정자에서 책 읽는 선비를 그린 초옥도(草屋圖)와 무관하지 않다. 깊은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는 나머지 풀 섶에 앉은 벌레들을 집보다도 더 크게 그리는 등 작품 곳곳에 동양화의 사상이 묻어난다. 대신 소재가 현대적으로 바뀌어 자동차·골프채 등이 등장할 뿐이다. 그림 중간의 탱크는 ‘골프는 전쟁이다’는 점을 은유한다.

경기도 화성 태생의 이왈종은 “땅 많고 아들 많고 기운 좋은 사람이 제일 부자이던 때라 몸이 약한 나는 쓸모없다며 일도 시키지 않더라”면서 방에 앉아 곧잘 그림 그리던 어린 시절을 되짚었다. 중앙대 회화과, 건국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후 추계예대 교수가 됐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대학가를 점령해 수업 진행이 어려워졌다. “안식년을 신청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무보수로 1년 안식년을 보낸 다음 1990년에 완전히 제주로 내려와버렸죠.” 서울의 안락한 대학 교수 자리를 제 발로 박차고 나온 이왈종은 “외부 행사, 사교활동이 끊이지 않는 서울을 떠나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고자 스스로 유배를 보낸 셈”이라며 “나 자신을 고립시킨 채 제주에서 딱 5년만 살자고 한 게 벌써 27년째”라고 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실행에 옮기자 그림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전까지는 세심한 관찰력과 생생한 묘사력이 주를 이루는 ‘실경산수’를 주로 그렸지만 제주에 정착한 후에는 잠시 붓을 내려놓고 한지와 골판지를 이용한 부조, 부조판화 작업, 조각 등을 시도했다. 선 몇 개로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그리는 춘화(春畵)를 골프공에, 재치 있게 18개 세트로 그리기도 했다. “전시에 선보였더니 ‘이게 무슨 동양화냐’ ‘(춘화를 두고) 너는 자식도 없느냐’는 핀잔이 돌아오더군요.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의 선택은 옳았고 동양화의 현대적 지평을 넓힌 시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술 시장도 반응했다. 한국아트밸류연구소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그림 가격 상승률을 집계한 결과 264% 상승한 이왈종이 185% 오른 이우환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순위도, 값도, 명성에도 “욕심이 없다”고 했다. ‘제주생활의 중도’라는 그의 작품명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중도’라는 것은 치우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평등의 사상입니다. 그런 차별의식을 버려야 마음이 편해요. 봄에 꽃피고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결실 맺고 겨울에 쉬는 것,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도 소멸하는 것이 바로 ‘연기’지요.”

삶이 곧 그림에 반영된다는 이왈종은 “부처는 세상을 고해의 바다로 봤고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했는데 화가인 나는 어떻게 세상에 행복을 나눌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에 늘 밝게 그림을 그린다”며 어두운 측면보다는 해학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매일 아침8시30분에 집을 나서 오후5시까지 작업실에 머물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림 그리다 죽는 게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예전에 골프 잘 칠 때는 70, 80대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백돌이”라는 얘기에서 늙음에 대한 한탄을 살짝 내비쳤을 뿐이다.

제주 생활 27년에, 골프에 미친 ‘골프 화가’가 돼버린 이왈종에게서 어느새 신선의 풍모가 느껴졌다. 본명 이우종 대신 “날 일(日)자를 눌러 찌그러뜨린 왈(曰)자”를 자기 이름에 넣은 사람답게 시간과 시대를 넘고자 한 자신의 화론을 피력했다. “사랑과 증오는 결합하여 연꽃이 되고, 후회와 이기심은 결합하여 사슴이 되고, 충돌과 분노는 결합하여 날으는 물고기가 된다. 행복과 소란은 결합하여 아름다운 새가 되고 오만과 욕심은 결합하여 춤이 된다”는 그는 “나의 작품에서 완전한 자유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제주=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 권욱기자

He is…

△1945년 경기 화성 △1970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1974년 제23회 국전 문화공보부장관상 △1983년 제2회 미술기자상 △1988년 건국대 교육대학원 졸업 △1979~1990년 추계예대 교수 △2001년 월전미술상 △2005년 서귀포시민상 문화예술 부문 △2011년 재단법인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 설립△2013년 왈종미술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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