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법조계와 IT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2부(문수생 부장판사)는 국내 기업 A사가 한국HP(한국HP엔터프라이즈·한국HPE)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지난달 하순부터 진행하고 있다. A사는 한국HP의 요구로 16차례에 걸쳐 한국HP가 협력사 3곳에 줘야 할 대금 약 9억원을 대신 지급했는데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분쟁조정협의회는 분쟁조정을 신청한 A사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한국HP가 7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HP가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소송전으로 번졌다.
A사는 한국HP가 협력사들끼리 서로 실체 없는 계약을 맺도록 해 이 같은 대금 대납을 감춰왔다고 주장한다. A사가 한국HP의 또 다른 협력사인 B사와 사업 계약을 맺은 뒤 실제 용역은 오가지 않고 돈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A사 관계자는 “한국HP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협력사들에도 대금 대납을 시켰다”며 “HP는 추가 하도급 계약을 대가로 대납을 요구해 대기업을 앞세우지 않고는 사업 수주가 어려운 IT 업계 중소기업들은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한국HP의 강요로 대금을 대납한 피해자가 다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A사 관계자는 “한국HP의 요구로 우리가 돈을 준 협력사도 알고 보니 다른 협력사에 대납을 하고 돈을 못 받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며 “협력사들 사이에서 수억원을 대납하고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상당수”라고 전했다. 한국HP는 사업 진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소규모 용역 대금을 협력사들에 대납시킨 뒤 추후 정산해주는 일이 많았는데 협력사 가운데 아예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몇 년이 지나서 일부를 돌려받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현재 한국HP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공정위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본격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추후 계약을 약속하며 대금을 내달라고 강요했다면 하도급법상 경제적 이익 제공 강요 금지 조항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면서 “다만 피해 기업이 증빙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종혁·강광우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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