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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시인 고은 "해외문학 많이 받아들였으니 이젠 우리문학 세계에 알려야죠"

<고은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장 단독 인터뷰>

나 하나론 안돼…세계문학 참여해 경험 폭 넓혀야

작품보단 賞 집착 풍토, 후배들 잘 극복할거라 믿어

희로애락이 있는 한 詩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고은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광주 서구의 홀리데이인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나윤석기자




시인 고은(84·사진)이 걸어온 발자취에는 한국 문학이 지난 세월 성취한 영예와 아직 못다 이룬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 1958년 등단 이래 시·소설·평론을 아우르는 저서를 150권 넘게 출간한 고은은 그 자체로 한국 문학이 도달한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깊은 바다다. 무려 20곳이 넘는 언어권에서 약 90개의 작품이 번역된 고은은 후배들의 약진 속에서도 여전히 세계 문학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작가다. 덕분에 그는 2000년대 이후 15년 가까이 국내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론돼왔다. 특히 올해는 노벨상 발표 직전 영국의 도박 사이트가 유력 후보 최상위권에 고은을 포함한 터라 수상 불발에 따른 아쉬움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고은은 이런 세간의 기대와 안타까움에도 아랑곳없이 지난 4개월 동안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여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주최하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넉넉지 않은 기간에 초청 작가를 섭외하고 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노(老)대가가 제 몸을 혹사하며 분주히 움직인 덕분일까. 이달 1~4일 광주에서 열린 올해 행사는 큰 무리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서울경제신문은 페스티벌 셋째 날인 3일 당일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온 고 위원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고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광주 서구의 홀리데이인호텔에서 약 30분 동안 이뤄졌다. 그가 국내에서 일간지와 단독 인터뷰에 나선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고 위원장은 매우 지친 기색에도 불구하고 행사 진행 과정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조직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몇 번이나 고사하다가 결국 수락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결코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 중국의 둬둬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나와의 인연 때문에 있던 스케줄도 취소하고 광주에 와줬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최 측인 ACC의 체면도 살게 된 거 같아 뿌듯한 마음이 우선 듭니다(웃음).”

쉽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노벨 문학상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고 위원장은 “그에 대한 언급은 하고 싶지 않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다시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고 위원장은 “한국 문학 앞에는 아직도 닫혀 있는 문이 많고 세계로 나아가 열어야 할 문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후배 작가들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기 문학에는 충실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당당하게 다른 나라의 작품들과 겨뤄본 경험이 없다”며 “나는 벌써 해외에 알려진 게 20년이 넘었지만 나 하나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화점에만 가도 얼마나 다양한 나라의 제품들이 뒤섞여 있습니까. 그동안 우리가 세계 문학을 많이 받아들였으니 이제는 우리도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소개할 의무가 있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한국 문학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세계 문학에 참여한다는 사명을 갖고 자아를 커다랗게 넓히는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벨상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자신이 공들여 닦아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더 높이 날아올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친 것으로 들렸다.



고 위원장은 작품 자체보다 상(賞)에 집착하는 듯한 풍토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후배 작가들이 알아서 잘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원래 작가라는 직업이 행복한 환경 속에서만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문학의 본래적 가치를 다소 훼손하는 것처럼 보이는 풍토가 만연한 시대일수록 문학의 역할이 더욱 빛날 수 있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화제를 다시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얘기로 돌리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고 위원장의 얼굴에도 편안하고 느긋한 미소가 번졌다. 올해 첫 행사의 주제인 ‘아시아의 아침’에 대한 맥락을 설명할 때 그의 눈빛은 특히 반짝였다. 고 위원장은 “한 세기 전 아시아는 식민지라는 어둠과 질곡 속에 있었다”며 “100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우리가 아침을 맞이한 만큼 ‘아시아 문학’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세계에 보편적인 화두를 던져보자는 취지에서 선정한 주제”라고 소개했다.

“과거 서구 사회는 아시아를 대상화·객체화하는 엽기적인 배타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힘이 성장한 지금 이런 시선과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기독교 문명이라는 통일된 이데올로기를 가진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무척이나 다양한 종교와 문화·언어로 이뤄져 있습니다. 두고 보세요. 앞으로 아시아는 이런 다원성·복합성을 바탕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만한 재미난 역사를 많이 쓰게 될 겁니다.”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고은 시인이 행사 마지막 날인 지난 4일 나이지리아 작가인 월레 소잉카와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편 고 위원장은 행사 마지막 날인 4일 아프리카의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와 가진 대담에서는 “지금이 세계 문학의 황금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시가 죽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임과 떠난 임, 물과 술, 희로애락이 있는 한 시는 절대 사라질 리가 없다”며 “시는 언제나 항구적인 별처럼 존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글·사진(광주)=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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