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과 차병원의 글로벌 의료체인 진출은 국내 규제에 가로막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영리의료법인의 물꼬를 해외에서 뚫겠다는 공동의 이해가 결합됐다. 일찌감치 차병원은 해외 진출을 통해 노하우를 확보했고 미래에셋은 다양한 해외 대체투자 경험으로 투자의 신뢰성을 높였다. 차병원은 지난 1999년부터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내에 불임센터를 열면서 국내에서 처음 해외 의료산업에 진출했다. 국내 영리법인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별도로 일반법인인 차바이오텍(085660)을 세우고 차헬스케어를 물적분할해 자회사로 두는 등 지주사 역할을 하게 했다. 차바이오텍은 설립자 차광렬 전 회장(현 차병원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을 비롯해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차병원과는 분리돼 있다. 차병원 관계자는 “양 사는 회계적으로 분리돼 있어 투자 수익이 병원 주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 투자 과정에서 차병원의 세계적인 난임치료 임상 경력과 세포치료제 개발, 제대혈 역량 등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 의료법인 지주사를 설립하는 것은 앞서 진출한 미국 시장이 건강보험 확대로 영리병원의 성장성이 막히고 부동산 값 상승으로 투자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의료체인 프로젝트는 지난해 미래에셋자산운용 프라이빗에쿼티(PE)에서 1,100억원을 투자받으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투자기구 역할을 할 ‘차헬스케어 싱가포르’를 세웠고 이와 별개로 싱가포르 현지 병원 네트워크와 의료 인력 확보 등을 위해 상장사인 싱가포르메디컬그룹 지분 8.8%를 120억원에 인수했다.
차병원과 미래에셋은 싱가포르 개인병원들이 세운 의료법인을 인수한 뒤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종합병원 등과 묶어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싱가포르 개인병원들은 네트워크 형태로 묶여 있어 법인화가 쉬운 장점도 갖추고 있다. 싱가포르 개인병원들 입장에서도 미래에셋·차병원의 지주회사 상장 프로젝트에 충분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안정적인 자산을 갖춘 기업에 올라탄 뒤 상장하면 30% 정도 지분을 유지하고 나머지 공모자금을 받아 한 번에 목돈을 챙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수익성에 아쉬울 게 없는 싱가포르 개인병원들이 차병원그룹의 인수 제안에 곧바로 응할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차병원과 미래에셋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홍콩 등 주변 국가에서도 대안을 찾고 있다.
차병원그룹을 제외하면 나머지 국내 병원들의 해외 투자는 감감무소식이다. 국내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비영리 재단이기 때문에 장례식장 등 수익사업을 하더라도 수익을 주주가 배당받을 수 없고 따라서 일반적인 투자나 매각이 어렵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인이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은 다시 병원에 투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안으로 복지부와 민간이 조성한 해외병원 투자펀드가 있으나 투자 수익은 고사하고 투자 자체가 안 되고 있다. 국내에서 조성한 펀드는 수백억원 규모여서 해외의 조 단위 투자 펀드에 밀리는데다 의료기술 이외 병원 경영 능력이나 재무구조가 열악한 병원이 많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병원에 뚜렷한 경영능력이 안 보이고 개별 의사들도 해외 취업을 꺼리면서 극소수 대형 병원 이외에 해외 진출 성공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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