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명문대 몇 곳과 정부 관계자들이 배석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인재 육성’ 간담회가 있었다. 그런데 모든 대학이 주요 과제로 창업가 육성을 발표했다. 최근 선진국들이 우리에게 전달한 위협적인 메시지는 원천 과학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뒤진 기초학문 쪽의 연구개발(R&D) 인재를 육성해야 할 시점에 대학들이 창업가 배출 시스템 구축에 무게감을 둔 것은 아쉬움이 컸다. 만약 ‘창업이 국정 의제의 최상위 우선순위가 아니고 일자리가 넘쳐나고 있어도 같은 결과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건국 이래 최고 규모의 벤처펀드가 모였다. 다양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정책과 관심은 양질의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듯하다.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그런데 이런 열풍 속에서도 왠지 가슴 한 곳이 답답하다.
현재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은 3년 이내 기업에 70%가량이 몰려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신생 기업 3년 생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6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우리의 3년 생존율은 39%로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독일(52%) 등에 비해 크게 낮다. 특히 창업 3년 이하 벤처의 비중이 지난 2012년 27.1%에서 2014년 13%로 급감했다. 다양한 창업지원 확대에도 낮은 기술 창업, 높은 폐업률 등으로 창업 3년 이하 벤처의 비중이 크게 축소된 것이다.
창업한 벤처가 상장까지 가는 데 평균 13년 이상이 걸린다. 마라톤이다. 갑자기 출발선에 예전에 없던 환영인파가 나타나 다양한 선물을 주며 코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사라진다. 서너 차례 데스밸리를 넘어 구력이 쌓여가는 벤처는 정부지원 사업이나 R&D 사업을 수주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또 우리나라의 어떤 투자사도 13년 이상을 기다려주지 않는 상황인데다 인수합병(M&A)마저 활성화되지 않은 현시점에 민간 투자자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연대보증에 사인하며 돌파를 시도하다 실패한 창업인에게 재기는 현재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창업은 의미 있는 도전이다. 개인 꿈의 실현일뿐더러 고용 창출 및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도전이다. 그러나 이런 도전이 준비되지 못한 생태계로 인해 반복적으로 좌절되며 많은 사회적 투자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멈춰야 한다.
우리가 닮고 싶은 미국이나 늦은 출발임에도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중국의 창업 생태계는 창업으로 성공한 선배 기업인들이 투자와 육성에 힘을 기울여 창업 생태계의 자율적 선순환을 이끄는 모양새다. 우리 또한 정부의 역할이 주도가 아닌 균형을 위한 조율로 개선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창업해야 하는 나라가 아닌 창업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이영 테르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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