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를 연임시키는 등 BOJ를 ‘비둘기파’로 채우는 인사를 사실상 끝낸 데 이어 2020도쿄올림픽 이후까지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지출 방안 마련을 정부에 지시했다.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로 소비와 수출을 진작시킨다는 ‘아베노믹스’ 전략을 집권기 내내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글로벌 증시 불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통상분쟁 등 ‘안전자산’인 엔화의 가치를 끌어올릴 악재들이 많아 아베노믹스의 장애물이 여전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전날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오는 2019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과 2020도쿄올림픽 이후 소비침체에 따른 경제 타격을 방어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계장관들에게 지시했다. 국회가 2018회계연도 예산을심의하는 단계에서 자칫 정부의 압박으로 비칠 수 있는 세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아베 총리가 구로다 총재 연임 등 BOJ 금융정책결정회의의 핵심 의사결정자를 통화완화 지지자인 ‘비둘기파’로 채운 데 이어 사실상 재정지출 확대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아베노믹스의 골격을 굳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 구로다 총재의 연임과 함께 아마미야 마사요시 BOJ 이사, 와카타베 마사즈미 와세다대 교수를 신임 부총재로 선임하는 인사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2013년 3월 취임 이후 ‘물가 상승률 2% 달성’이라는 목표로 대담한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추진해왔다. 아마미야 이사는 구로다 총재의 측근으로 금융완화 노선을 지지해왔으며 와카타베 교수는 “2019년 소비세 인상 이후 실물경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양적완화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 통화완화론자’로 꼽힌다. 인사안이 공개된 후 시장에서는 “아베 총리가 ‘출구’를 봉쇄하고 엔화약세 유도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베 정부가 입안할 재정정책도 ‘대규모 지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16개 민간연구소의 예측을 종합해 내년에 소비세율을 현 8%에서 10%로 인상하면 소비 등 내수 타격으로 그해 4·4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 기준 -2.6%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2020도쿄올림픽 이후에는 건설경기 침체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에는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아베 정부가 선제적 경기진작 정책으로 정권의 불안요소를 미리 억제하기 위해 대규모 돈풀기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신문은 정부가 올여름까지 세부안을 정리할 예정이라며 부동산·자동차 등 고가 상품에 적용되는 세금을 감면해 소비를 진작시키고 대규모 인프라 정비로 건설경기를 부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아베 총리가 통화완화와 재정확장으로 엔화약세를 추동한다는 목표를 쉽게 달성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물가 상승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속도를 높이면 글로벌 증시 불안이 반복돼 안전자산인 엔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뉴욕증시의 조정장이 이어지던 16일 엔화는 달러당 105엔대에 거래돼 2016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트럼프 미 행정부의 한국·중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검토 등 미국발 글로벌 통상 불안도 엔화강세를 추동할 수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재무성의 외환정책 실무를 책임진 아사카와 마사쓰구 재무관은 전날 엔화강세에 대해 “일방적으로 치우쳤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며 “(뉴욕증시의) 조정이 끝났는지 여부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해 일본 정부가 엔화 추이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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