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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의 날] 외딴 곳서 미성년자 성폭행하고도…소리 안 질렀으니 상호 성관계?

강제추행·강간·준강간 사건

2016년 실제 기소는 40% 불과

"정황증거까지 받아들여달라"

여성단체들, 한목소리로 요구

7일 여성문화예술인연합 대표자들이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5년 전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한 대학생을 만난 중학생 A(당시 15세)양. “커피 마시고 산책하자”던 그는 순식간에 A양을 인근 공사장으로 끌고 들어갔다.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A양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유리조각이 널린 공사장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검찰은 “저항이 없었으니 합의 아래 이뤄진 성관계”라며 가해자를 불기소 처분했다.

강간·강제추행·준강간 등 성폭력 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전체 사건의 50%는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리되고 있다.

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접수된 강제추행·강간·준강간 등 사건은 1만8,959건이며 이 가운데 실제 기소된 사건은 7,689건(40.5%)이었다. 가정보호조치 등을 제외한 9,393건(49.5%)은 불기소 처리됐다.

8일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여성단체들은 성폭력 기소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건 당일 분위기와 장소의 폐쇄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만 판단해 결론을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카카오톡, 모텔 영수증 등은 가해자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증거로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고 여성계는 주장했다.

형법 297·298·299조는 폭행이나 협박, 피해자가 항거불능의 상태일 때 간음과 추행을 하는 행위를 강제추행과 강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지” “왜 몸에 상처가 없는지” 등을 캐묻게 돼 사실상 ‘피해자 재판’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내적·외적 동의를 모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발현된다고 보고 성폭력을 인정할 때 피해자의 내적·외적 동의를 모두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말과 행동으로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인 내적 동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독일 형법은 성관계 당시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꼈는지 △외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는지 등 피해자의 내적 동의를 가늠할 구체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판례가 있다. 지난해 고등학생 B양은 친구 친척의 차를 얻어탔다가 외진 산속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B양은 극심한 공포감을 느낀 상태였다. B양의 변호를 맡은 이선경 변호사는 “성 경험이 없는 B양이 콘돔도 없이, 더러운 카시트 위에서 이뤄지는 낯선 50대 남성과의 성관계에 ‘진심으로’ 동의했을 거라 보느냐.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 검찰 기소를 이끌어냈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에서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미성년자와 장애인만이라도 정황증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피해자들의 마음”이라고 전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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