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서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이르면 상반기 중 첫 삽을 뜰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예상대로 착공이 이뤄진다면 지난 2014년 부지 매입 이후 4년여 만이다. 사실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사옥부지를 매입했을 당시 일각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대기업에 넘겨줬다’거나 ‘10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사옥부지를 사들이는 대신 투자를 하는 게 낫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사옥 추진과 당시 부지 매입 과정을 지켜보며 기자는 다른 생각이 든다. 삼성동 한전사옥 부지는 애초 현대차그룹의 GBC 계획에는 없던 땅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사업을 추진하던 지역은 강 건너 뚝섬의 삼표레미콘 부지였다. 야심 차게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를 좌초시킨 것은 서울시. 이유는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은 도심 및 부도심에만 지을 수 있도록 규정한 ‘초고층건물 관리 기준안’이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서울시의 벽에 막혀 원래 보유하고 있던 강북 땅은 내버려둔 채 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한전사옥 부지를 사들여 사옥을 짓게 된 것이다.
만약 서울시가 뚝섬 사옥 건립계획을 허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레미콘 공장 대신 들어선 대기업 사옥 주변의 모습은 확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2만명에 이르는 대기업 임직원 상주에 따른 주변 상권 활성화와 다양한 문화시설이 함께 들어서면서 낙후된 준공업지역이 기업의 힘으로 재생되는 상전벽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기업 입장에서도 사옥 건립 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더 많은 신규투자 여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모호한 기준은 현대차그룹이 강남의 금싸라기 땅에 사옥을 짓도록 했고 이는 서울 강남·북 간 인프라 격차만 키웠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삼성동 땅을 매입한 후 주변 땅값은 서울시 평균의 4배에 이를 만큼 치솟았고 가뜩이나 비싼 강남권 아파트 값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만난 재계의 한 고위임원은 서울시가 현대차그룹의 뚝섬 사옥 건립을 가로막은 것을 두고 “최악의 결정 중 하나”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해온 일련의 정책 집행과정을 되짚어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남·북 간 불균형 문제는 현대차그룹의 사옥에 국한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부터 인프라 편중 문제는 지속적으로 축적돼오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속도로망만 봐도 그렇다. 수도권 남부의 경우 경부축에 집중된 교통망 분산을 이유로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망이 구축돼왔지만 이 과정에서 북부지역은 배제됐다. 유일하게 수도권 북부지역과 직접 연결되는 고속도로망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일 정도다. 그나마도 민자사업으로 지어진 탓에 이용요금도 더 비싸다. 서울 시내 지하철망 역시 강북권을 대상으로 한 구간은 6호선이 유일하며 7호선 이후로는 줄곧 한강 이남에 편중됐다.
인프라의 강남 집중이 가져온 결과물은 집값이다. 정부가 아무리 강남 집값이 거품이라고 목소리 높여 봤자 시장이 요지부동인 이유다. 길이 생기고 사람이 모여들면 돈이 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정책이다.
강남 집값을 잡는 확실한 방법은 수요의 분산이다. 강남 못지않게 교육 환경이 양호하고 사통팔달의 교통망, 편리한 생활환경을 갖춘 곳이 있다면 굳이 무리하며 가뜩이나 비싼 강남에 사람과 돈이 몰려들 이유는 없다.
물론 수도권 남부에 인프라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요의 불균형이 워낙 크다 보니 경제적 타당성만 놓고 본다면 강북권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순위가 한참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더라도 수요만 좇아 강남에 인프라 투자를 집중시키는 기존 정책 구조가 유지되는 한 불균형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낙후된 강북 지역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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