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핵심기술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를 압박하는 것과 달리 세계적으로는 기업의 영업기밀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정부가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 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M&A)까지 제동을 걸며 차단벽을 높이고 있다. 일부 국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환경이나 인권 등의 비재무적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하도록 요구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국가는 기업이 수십년간 쌓은 경영 노하우와 기밀이 유출되지 않도록 정부가 방패막이가 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에 가장 앞장서는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 2017년 5월 미 의회는 기업의 영업비밀 방어법(Defend Trade Secrets Act)을 통과시켰다. 원가와 유통마진 등 기업의 영업비밀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는 것에 대한 방어권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개별 주마다 상이했던 영업비밀 보호 규정을 연방 차원에서 통일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에 앞서 2016년 4월 유럽연합(EU)도 기업 영업비밀의 정의와 불법행위의 범위, 구제수단 등을 규정한 영업비밀 지침(Trade Secrets Directive)을 유럽의회에서 통과시켜 유럽 단일의 강화된 영업비밀 보호 기반을 마련했다. 일본도 영업비밀 유출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했다. 위반행위에 대한 벌금을 개인 최고 3만엔, 기업 10억엔으로 대폭 상향했다.
지적재산권 침해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도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1993년 제정된 반부정당경쟁법은 24년 만인 2017년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26차 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됐다.
최근에는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범위 개념이 확대되면서 각국 정부가 국가안보 명분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들의 M&A에도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액션이다. 미 반도체 기업인 퀄컴을 싱가포르계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에 내주면 기술유출에 따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다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부각되면서 비재무적 정보는 제한적인 선에서 공개가 요구되기도 한다. EU는 종업원 수 500명 이상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 공시 의무화를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대상은 환경과 사회·인권 등에 관한 정보로 공개 범위는 제한적이다. 국제기구 GRI의 팀 모힌 회장은 “당장 기업의 영업비밀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 등 기업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호·노현섭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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