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대세론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란 핵 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에 이어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원유수출 급감, 석유수출기구(OPEC) 가입국의 감축 행보 등 유가를 끌어올릴 요인이 곳곳에 산재해 100달러를 찍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17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최대 정유기업 토탈의 파트리크 푸야네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해 “우리는 지정학이 시장을 다시 지배하는 세상에 있다”며 “몇 달 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OPEC과 러시아가 감산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가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재개할 경우 이란의 석유수출 판로가 막혀 최근 탄력을 받은 유가 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전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오전10시 배럴당 80.18달러까지 치솟았다. 브렌트유가 8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14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토탈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서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면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에서 추진 중인 5조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도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세계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원유수출 급감도 가격 상승 전망에 힘을 실어줬다. 베네수엘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데다 미국의 제재로 국영 석유업체 PDVSA의 원유저장 시설이 압류되면서 원유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베네수엘라의 노후 유전을 중심으로 생산량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며 “저임금과 안전문제 때문에 PDVSA를 떠나는 직원들도 속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OPEC과 러시아 간 원유 생산량 감축 합의가 17개월째 이어지는 것도 유가 반등세의 원인이라고 외신은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자 국제유가가 심리적 지지선인 100달러 수준에 근접하거나 이를 돌파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진단한 데 이어 모건스탠리도 오는 2020년에는 배럴당 9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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