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5월. 이맘때면 푸르름의 압권은 단연 청보리밭이 아닐까. 그 넓이가 몇백 평, 몇천 평도 아닌 수만 평에 이른다면 그 감동을 몇 자나 몇 마디 필설로 옮기기는 애초 무리입니다.
강원도 양양의 가평리에 가면 그런 곳이 있습니다. 차 한 대 다닐만한 1차로를 사이에 두고 2만평 가량 펼쳐진 들판. 보기에도 드넓은 이곳에 청보리 물결이 장관을 이룹니다. 이달 초 고향마을의 옆 동네인 이곳을 지나다 장대한 광경에 짜릿함마저 느꼈습니다. 그때는 마침 센 바람이 불고 있었고, 청보리들은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는 듯 했습니다. 그 흔치 않은 모습에서 넘치는 생명력을 봅니다. 그러자 청보리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바람이 분다. 나도 살아야겠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던가? 불과 열흘 전에 봤던 그 청보리들이 누렇게 익어 열매를 맺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청보리를 심은 임대자가 사료용으로 모두 베어버린 것입니다. 아쉽지만 그 또렷한 장관은 내년 봄 이맘때나 또 기약해야 합니다.
/고계연기자 kogy2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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