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리스트도 없었고 형사 조치도 없다”며 ‘셀프 면죄부’를 내리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사찰 대상이던 일부 판사를 중심으로 형사고발 가능성까지 제기하면서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사상 초유의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27일 법조계 안팎에서는 지난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102일간의 조사 끝에 내놓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3월부터 1년 이상 세 차례나 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섰음에도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채 관련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은 게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건의 핵심 인물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조사단의 답변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49명의 인적조사 대상에서 아무 이유 없이 빠졌다. 관계자 상당수가 현직 판사가 아닌 만큼 징계가 아닌 형사 조치를 염두에 둬야 하는데 애초부터 이런 가능성을 차단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특조단의 형사 조치는 없다”며 “징계와 그 외 인적 조치는 징계권자나 인사권자가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동향·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파일을 확보하고도 “조직적·체계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줬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블랙리스트 존재를 부정한 결론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을 물밑 조율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조직문화 개편·연수 프로그램 개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특조단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임종헌 차장을 필두로 한 법원행정처는 사법부의 최대 현안인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정치 재판을 미끼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 관련 문건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철도노조 파업 사건, 통상임금 판결 등을 사법부의 협조 사례로 들었다. 또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 판결 등은 청와대 접근 카드로 제시됐다.
조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 대법원과 특조단의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앞서 특조단은 세 번째 회의를 열기로 결정한 이달 21일부터 회의 당일까지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고 미룰 수도 있다”는 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당일에도 오후7시께 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오후10시20분께로 연기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임에도 이례적으로 보도자료 한쪽 없이 192장짜리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는 형태로 마무리했다. 결론은 진작부터 내려놓고 부실조사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타이밍만 잰 게 아니었느냐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법원의 셀프 결론에 대한 불신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법조계에서도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 필요성을 적극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사찰 대상자로 이름을 올린 차성안 판사(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조단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겠다면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반대 목소리를 내는 판사의 모든 것을 뒤져 사찰하는 게 살 떨리는 불이익 그 자체”라며 “법원 상대 국가배상청구와 유엔특별보고관 진정 등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글에는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등 동료 법관들도 지지 의사를 보냈다.
앞서 올해 1월 시민단체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을 해당 의혹으로 고발했을 당시 검찰은 사법부 조사단의 결론을 보고 수사 진행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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