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이 성공하려면 중소기업의 규제·애로 해결이 필수다. 단순히 전체 기업체 수에서 9할 이상을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제쳐놓더라도 산업 현장에 밀착해 어떤 규제나 제도가 불합리한지 따지는 것은 산업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현장에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과 불합리한 규제를 해결하는 중소기업옴부즈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지난해 9개월 동안 수장 공백을 겪으며 존재감이 약해져버렸다. 지난 1월에는 비슷한 기능의 ‘혁신성장옴부즈만’이 발족하면서 중소기업옴부즈만 ‘홀대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2월 4대 중소기업옴부즈만으로 취임한 박주봉(사진) 대주·KC그룹 회장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다. 박 옴부즈만은 5월24일 서울 종로구 동덕빌딩에 위치한 중소기업옴부즈만 사무실에서 취임 100일을 앞두고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진돗개 정신’으로 중소기업옴부즈만이 중소기업 규제 문제 해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담=이규진 성장기업부장 sky@sedaily.com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중견·중소기업의 관점에서 불합리한 규제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 설립된 차관급 독립기관이다. 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과 석·박사급 전문위원 등 30여명의 사무국 직원들이 기업으로부터 애로사항을 듣고 이를 정부 부처나 지자체와 함께 논의해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10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그동안 1만8,000여건의 규제 애로를 처리했다.
박 옴부즈만은 중소기업옴부즈만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해 △소상공인 규제 생활밀착 개선 △협·단체의 기업체 갑질 근절 △창업 문턱 제거 △지역특구 규제 합리화를 4대 목표로 잡고 중점적으로 해결해나갈 방침이다. 그는 “소상공인이 불편해하는 것들을 듣기 위해 계속 소상공인 간담회를 열고 있다”며 “거기서 나온 안건을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풀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얘기했다. 이 대목에서 불합리한 규제를 끝까지 해소하겠다는 의미로, 박 옴부즈만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을 누차 강조했다.
협·단체 갑질과 관련해서는 “기업체로부터 너무 과도하게 수수료를 받거나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사안을 이용해 기업회원을 더 늘리도록 강요하는 등의 사례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사안들을 조사해 개선함으로써 정부 서비스의 질을 더 높일 것”이라고 설파했다. 아울러 각 지역 특성화 시장 활성화 방안으로는 “지역별로 특화된 시장이 270여개에 달한다”며 “전주비빔밥 등 특산물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계속 뛰어다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업 문턱 개선과 관련해서는 대출 상환 압박으로 고민하고 있는 초기 기업의 부담 경감에 방점을 찍었다. 박 옴부즈만은 “가령 생산을 늘리기 위해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공장을 지은 경우 업체에 따라 가동까지 2년이 걸릴 수도, 3년이 걸릴 수도 있어 거치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한 기업만 놓고 봤을 때도 사업이 잘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사이에서 일이 잘 안 될 때는 상환을 늦춰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저임금이 올라가고 주당 근로시간이 짧아지다 보니 은행에서 빌려온 돈만으로 운영비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차입자금 상환을 늦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애로 해소를 위해 박 옴부즈만은 금융위원회와 논의해 상환기간을 1년 늦춰주는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박 옴부즈만은 이 4대 과제를 해결하는 등 중기옴부즈만이 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 정무적인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전까지는 단일 부처의 실무자와 논의하면 곧바로 규제 애로를 풀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남은 규제의 대부분이 경제구조의 근본을 건드리는 사안이어서 범부처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옴부즈만은 “그동안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정부 부처 사무관이나 주무관과 함께 기업들이 제기한 애로사항을 풀어왔다”며 “그러다 보니 쉽게 풀릴 규제는 다 풀려 현재 남아 있는 규제는 상당히 고차원적이면서도 경제적인 파급 효과가 굉장히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수학 문제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수준은 다 풀렸고 고등학교 레벨의 어려운 문제들만 남은 상황”이라며 “실무 차원에서 그치지 말고 장관이나 국회와 논의하는 등 정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기업의 비용절감에 나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규제개혁을 총괄하는 주요 조직은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에서는 부처별로 한번 정리된 사안을 취급하기 때문에 박 옴부즈만은 규제개혁위 이전 단계에서 각 부처, 국회 상임위원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규제를 푸는 역할에 주력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박 옴부즈만은 “규제개혁위에는 각 부처별로 협의가 끝난 사안들만 넘어오기 때문에 규제개혁위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사장되는 규제 애로사항이 많다”며 “규제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50조원이 넘는데 지금까지는 한 7,000억원 정도만 해결한 상태”라고 짚었다.
그는 중소기업옴부즈만이 제 역할을 하려면 우선 미약한 존재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옴부즈만의 ‘이름값’이 있어야 국회와 부처를 설득하며 물밑작업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브랜드가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 정무적인 활동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임기가 시작된 후 정부 부처를 다녀보니 중소기업옴부즈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며 “중소기업옴부즈만이 지금까지 3대를 거쳐오면서 실무적으로 잘한 부분이 많았지만 정무적인 활동에 비교적 중점을 두지는 않아 존재감이 크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힘 있는 중소기업옴부즈만을 위해 박 옴부즈만은 공보조직을 만들어 국회, 정부 부처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홍보조직이 있어야 우리와 관계부처 사이에서 협의가 안 되는 것도 관련 국회 상임위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며 “법에 따르면 제가 국회의장에게 사안을 보고하게 돼 있다. 국회와도 소통해야 장관들이 중소기업옴부즈만에서 올린 안건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과의 소통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미 간담회 절차부터 기업 편의를 위해 대폭 개편했다. 이전에는 여러 업체를 한꺼번에 불러놓고 순서대로 자기 문제를 발표하게 하는 방식으로 간담회를 하다 보니 참석자들은 다른 기업들의 ‘관심 없는’ 애로사항을 경청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러나 박 옴부즈만은 각 기업의 공통 관심사는 함께 논의하고 기업별 애로사항은 각 부처 공무원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토론하도록 바꿔 효과를 높였다. 그는 “여러 업체를 불러놓고 간담회를 하다 보니 기업들은 자신이 발표할 3분을 위해 나머지 2시간57분을 버려야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사례를 묻자 고물상 문제가 가장 기억난다고 답했다. 박 옴부즈만은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 고물상이 8,000여개에 달하는데 이 중 단 한 개도 허가를 받은 게 없다”며 “또 고물상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한 달에 5만원도 안 되는 돈을 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부와 협의해 박스를 모으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그대로 돈을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
■He is...
△1957년 전남 장흥 △1978년 용문고 졸업 △2009년 한세대 컴퓨터공학과 △1988년 대주개발 대표이사 △1999년 대주중공업 대표이사 △2001년 KC 회장 △2004년 한국철강구조물협동조합 이사장 △2005년 한중경제협회 부회장 △2009년 인천건설자재협의회 회장 △2010년 대주코레스 회장 △2011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 △2013년 대주이엔티 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일감몰아주기대책위원회 위원장 △2014년 대주정공 회장, 한국실업탁구연맹 회장 △2018년 중소기업옴부즈만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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