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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낙태죄 폐지-찬성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여성 자기결정권 해치는 성차별적 처벌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당사자인 여성과 의료진에게 죄를 묻는 낙태죄의 폐지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은 낙태한 임부를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임부의 동의를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 등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정한 한 해 낙태 수술 건수는 16만건(2010년 기준)에 이르지만 실제 적발하기 쉽지 않아 낙태죄 사문화 논란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여성·시민단체의 강력한 폐지 주장에도 법무부는 지난달 말 6년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재개된 헌법소원 심판 공개변론에서 낙태 급증을 막기 위해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폐지 찬성 측은 여성이 민주시민의 기본권인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와 남성의 책임을 외면한 낙태죄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현재도 건강문제·성폭력 등에 의한 임신은 합법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만큼 생명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가 존속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낙태죄 폐지 논쟁에 있어 기본 프레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비가 그것이다. 이처럼 두 개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것 같은 대칭구조는 해당 논쟁을 처음부터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하는 것 같은 편파성을 싣게 했다. 이미 ‘낙태(落胎)’라는 용어 그 자체가 부정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언급한 바와 같이 낙태보다는 ‘임신중절’ 혹은 ‘임신중단’이 보다 적절한 용어로 보인다. 만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또는 임신을 원했는데 상황이 너무나 어려워져서 임신상태를 지속해 출산 및 양육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접근한다면 그 부정성의 무게는 현저히 달라진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실직·가계파산으로 자신들의 하루하루 일상도 꾸려가기 벅찬 사람들에게, 아니면 사랑한 사람이 변심해 떠나고 혼자 남겨진 사람들에게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아무런 대안의 여지도 없이 출산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모자보건법·형법 등 여러 법률의 강력한 제재 아래 출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고 규정한 국가와 사회는 어떠한 이유로든 임신을 하면 출산밖에 출구가 없는 여성들에게 어떤 대책들을 제시해왔나.

부모(때에 따라서는 부 또는 모 혼자)가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애당초 만들 계획도 없이 애 낳기만을 법률로 강요한 국가는 왜 처벌받지 않는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임신을 중단하지 않고 출산한 여성에 대해 사회구성원이 무례하게 행하는 터부와 낙인은 왜 문제 삼지 않는가. 여성은 임신을 중단하면 법적으로 처벌받고 미혼모가 임신을 지속해 출산과 양육을 하게 되면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임신이라는 공동행위의 다른 축인 남성은 법적 처벌과 사회적 비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성별로 불평등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임은 이미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낙태죄 논쟁은 우리 사회가 유독 여성에게 얼마나 혹독한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20년 넘는 낙태죄 논쟁의 역사 속에 국가와 남성의 책임과 책임 부재에 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직 여성에게만, 혹은 여성에 대한 단죄와 혐오만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재생산돼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세계적으로 임신중절 합법화가 대세이며 처벌로 강제하기보다는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예방교육 조치가 보다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80%가 12주, 18주, 24주 등 시기별 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인구의 88%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도 지난 5월25일 헌법 개정 국민투표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면서 임신 주기별로 다른 중절 기준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 경험이 있는 여성 10명 중 8명꼴로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국내에서도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고 본다. 다수결 원칙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만 예외일 이유는 없다.

여성에게도 동등한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대우를 허용하라. 민주시민의 기본권으로서의 자기결정권은 물론 불법 낙태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건강권, 자아존중 권리 침해에 국가는 이제 법률로 답해야 한다. 피임교육 체계화, 임신 초기 상담 내실화,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입양문화 활성화가 정책적으로 수반됨을 전제로 해 낙태죄는 2018년 폐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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