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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너와 극장에서']극장에 보내는 발칙한 세레나데

유지영 감독의 ‘극장쪽으로’ /사진제공=서울독립영화제




캄캄한 극장에 들어서 수백 명의 관객을 향해 쏘아 올리는 빛의 향연을 보는 일이 연례행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극장에 가는 날은 특별했고 그 안에서 삼켰던 팝콘의 맛은 특별한 기억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다. 극장 안에 있노라면 궁상맞은 일상은 은막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했고 그런 극장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기에 더욱 좋았다.

저마다 시네필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극장에 얽힌 특별한 추억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는 또 한 편의 영화가 되기도 한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신인 감독 발굴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옴니버스 장편 ‘너와 극장에서’는 극장에 대한 기억과 상상력이 버무려진 결과물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이며 이미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이 작품은 세 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극장’을 주제로 완성한 세 편의 에피소드로 하나같이 애틋하다 못해 발칙한 사랑의 세레나데다. 이들에게 극장은 반복되는 일상을 촉촉하게 하는 미스트이자, 사랑에 빠지거나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하게 하는 욕망의 장이며 누추한 일상을 잠시나마 분칠해주는 탈출구다.

각자가 뽑아내는 세레나데의 톤과 리듬은 각기 다르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 쪽으로’는 직장 때문에 지방 도시에 살게 된 선미가 극장으로 향하는 과정을 가만히 비춘다. 선미의 일상은 매일 똑같고 지루하다. 그런 선미에게 어느 날 오오극장(대구의 최초의 독립영화관)에서 만나달라는 쪽지가 도착한다. 정체불명의 인물을 만나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선미는 놀라운 반전을 맞게 된다. 마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가 등 뒤에 감춰뒀던 반전의 카드를 내밀듯, 우리의 영화 보기는 늘 예측하려는 관객과 이를 뒤집으려는 감독의 줄다리기다.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 /사진제공=서울독립영화제




두 번째 에피소드는 ‘비치온더비치’ ‘밤치기’ 등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로 ‘여자 홍상수’로 통하는 정가영 감독의 연출작 ‘극장에서 한 생각’이다. 장소는 서울 압구정동의 예술영화관 이봄씨어터. 주로 멜로영화를 찍었던 영화감독 가영은 멜로가 지겨워졌다는 이유로 공포 코미디 ‘극장 살인사건’을 연출했고 영화 속 장면은 어느 토요일 아침 관객과의 대화 현장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속 이야기가 실화냐는 질문을 안 받게 돼서 좋다’고 말했던 가영에게 한 관객이 남자기자와의 불륜 사실을 물으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극장은 관객은 물론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배우마저 한순간도 가만히 놔두는 법이 없다. 영화는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헤집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어이 눈에 보이는 곳에 꺼내놓는다. 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를 초대하고야 만다.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 /사진제공=서울독립영화제


마지막 에피소드는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 업무와 가사노동에 찌든 여성 직장인이 실수를 저지르고 잠적한 직장 동료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이다. 사라진 직장 동료가 시네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라면 있어야 마땅한 장소인 서울아트시네마로 향한다. “텔레비전은 시청자를 안방의 정주인으로 만들지만 영화는 관객들을 거리의 유목민으로 만든다”는 말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거리의 면면을 확인하고, 극장 계단을 오르며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여정도 다르지 않다. 극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극장을 벗어나 영화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 깊숙이 넣어두기까지 우리의 영화 보기는 계속된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관객의 몫이다. 객석 불이 켜지고 극장을 벗어나며 관객 각자의 이야기가 피어오른다. 영화가 비추던 공간에서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게 하는 힘.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28일 개봉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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