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인피니트 엘)는 딱 임바른이었다. 판사복은 벗었지만, 아직 그 기품까지는 벗지 않았다. 조금 더 캐릭터에 빠져있고 싶어서였을까, 그는 여유를 잃지 않고 직접 진행하듯 인터뷰를 이끌었다. 그리고 판결문을 낭독하듯 답변은 똑부러졌다.
16일 종영한 JTBC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 연출 곽정환)는 이상주의 판사, 원리원칙을 우선하는 판사, 현실주의 부장 판사가 펼치는 법정의 모습을 담아 호평을 이끌어냈다. 김명수는 섣부른 선의보다는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엘리트 판사로 출연해 고아라(박차오름 역), 성동일(한세상 역), 류덕환(정보왕 역) 등과 호흡을 맞췄다.
드라마상에서 김명수는 임바른과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았다. “감독님과 작가님께서 나를 ‘임바른스럽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와 사상 자체가 비슷하다”는 그는 “성격이나 말하는 모습도 비슷했다. 작가님께서 시나리오를 쓰실 때 내 성격이나 성향을 투영해서 쓰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부분이 있다면 임바른은 정의롭지 못한 것을 참는 편인데 나는 나서야 할 상황에는 적극적이 된다. 원작을 봤는데, 이걸 바탕으로 드라마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며 “구체적으로 나온 대본을 보는데 임바른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으로 자주 궁시렁거린다. 그런 마음의 소리가 매력 있게 보였다”고 덧붙였다.
김명수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민사재판을 접했다. 촬영하면서 알게 된 법률 지식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다. 김명수는 “관심도 많아졌고 몰랐던 부분도 많이 깨어났다”면서도 “하지만 막상 전체적인 뉴스를 봤을 때는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여전히 모르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단순히 법률 지식을 넘어 ‘정의’에 대해 다시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묻혀있던 것을 끄집어내고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극중 ‘꼰대’라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던 사람들의 인식을 박차오름이 바꾸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었는데 다시 보면 그게 아닐 수 있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김명수에 대한 호평이 잇따랐지만, 앞서 캐스팅 소식이 들릴 때만 해도 일정 부분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돌그룹 출신에 주요 인물 중 가장 나이가 어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명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현장에서 더 노력했다. 2살 많은 고아라를 극중 이름으로 부르거나, 친구로 나오는 류덕환과 반존대로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나이를 극복해야 연기도 자연스럽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또 드라마지만 판사복을 입었을 때 판사로서 중심을 잡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들과 만나서 리허설도 많이 했다. 대본이 나올 때마다 저희끼리 따로 리딩을 했다. 작가님에게도 계속 피드백이 왔다. 진짜 모르는 부분을 솔직하게 물으면 그만큼 답변이 와서 잘 준비할 수 있었다. 서로 소통을 굉장히 많이 했다.”
구체적으로는 성동일, 류덕환, 고아라와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김명수는 “성동일 선생님이 유쾌하고 밝기로 유명하시지 않나. 촬영장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좋았다. 같이 하면서 배울 점도 많았다”고 운을 뗐다.
“초반에는 대본에 있는 임바른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연기했는데 갈수록 변했다. 성동일 선배님께서 하시는 애드리브도 괜히 한 번 받아보고 류덕환 형도 따라해 보려고 했다. 두 분 다 워낙 연기를 잘하시는 분들이니까. 나중에는 성동일 선생님과 덕환 형이 ‘왜 이렇게 내 거를 많이 따라하냐’고 하셨다. 그 정도로 선배들의 연기를 배우고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고아라 누나가 오름이에 몰입한 것을 보고도 ‘나도 이렇게까지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 주고받고가 아주 잘됐다.”
김명수는 ‘미스 함무라비’로 첫 주연에 도전했다. ‘군주’ 등 전작에서는 부담감도 있었고, 상황상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끼를 더 펼쳐 보일 수 있었다고. 좋은 선배들을 만난 덕에 그들이 하는 연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모니터를 하니 단점이 많이 보였다. 댓글에도 법정 용어가 많고 말이 많으니까 발음이 안 들리는 부분이 있었다. 또 감정 표현에서도 미숙한 부분이 살짝 있더라.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좋았다는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더 많다. 더 노력해서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미스 함무라비’는 마지막 회에서 5.3%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명수는 “월드컵과 겹쳐서 조금 더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시청률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는다. 시청률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한 게 크고, 좋은 연기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게 크다”고 말했다.
“시청률을 떠나서 몇 년이 지났을 때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회자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추천받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 ‘인생캐릭터’를 만났다고도 해주시는데, 지금까지 연기 중에 제일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그만큼 집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좋지만 다음 작품에서 그런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더 몰입하고 잘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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