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작원이 신변 보호를 이유로 증빙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채 외교부를 상대로 외교관 여권을 발급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홍순욱 부장판사)는 25일 해외공작원 A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과 계약을 맺고 중국에서 대북 공작 등 업무를 했다고 밝힌 A씨는 “공작활동으로 중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신변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난해 9월 외교부에 외교관 여권발급을 신청했다.
외교부는 7일 이내에 발급 신청서류를 보완하라는 요구를 A씨가 받아들이지 않자 발급을 거부했다. 여권법 시행령에 따르면 외교관 여권발급 대상자는 전·현직 대통령, 국무총리 등을 비롯해 ‘원활한 외교 업무 수행이나 신변 보호를 위해 외교관 여권을 소지할 필요가 특별히 있다고 외교부 장관이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여권 발급신청서, 발급대상자임을 증명하는 서류, 여권용 사진 1장, 그 밖에 외교부령에 규정된 서류를 내도록 돼 있다.
하지만 A씨는 “시행령에서 ‘신변 보호’를 위해서 외교관 여권을 발급해 줄 수 있다고 규정한 이상, 발급대상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외교부에서 발급대상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처럼 비밀 수사 업무를 수행하다 신변 보호가 필요해진 사람은 관계기관으로부터 발급대상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외교 업무와 관련성이 없는 단순 신변 보호 필요성만으로 외교관 여권을 발급해 줄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외교관 여권의 발급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증명 서류를 제출받지 않고 발급해줄 경우 발급이 남발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한민국과 세계 각국 사이 체결된 다수의 사증 면제 협정에 따라 외교관 여권 소지자에 대해서는 사증 심사가 면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교관 여권 발급은 여권 행정의 대외적 신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여권발급을 신청한 사람으로부터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받아 발급 여부를 심사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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