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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그래픽 노블

얼마 전 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행진하라(March)’라는 제목의 낯선 만화책(?)을 접하게 됐다. 표지에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만화치고는 거창한 구호까지 적혀 있었다.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인 존 루이스의 일대기를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는데 그의 치열한 인생역정도 그렇거니와 독특한 그림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흑백의 어두운 이미지가 독자들에게 거칠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데다 섬세한 그래픽 역시 기존 만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 책이 미국도서상을 수상하는 등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픽노블은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자 문학성이 높은 만화다. 인권운동이나 난민 문제처럼 일반 만화에서는 보기 힘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며 복잡한 스토리라인과 실험적인 그림이 특징이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2008년 개봉된 영화 ‘스피릿’의 원작자인 윌 아이즈너였다. 그는 당시 싸구려 장르로 여겨졌던 만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겠다며 대안적 용어로 썼다고 한다. 출판사들이 ‘소설만큼 깊은 텍스트와 기존 만화보다 더 예술적인 그림의 결합’이라는 선전문구를 내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래픽노블의 대표작인 프랭크 밀러의 ‘신시티’는 출판되자마자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사용한 독특한 스타일로 만화를 뛰어넘은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현대사회의 병폐를 꼬집은 메시지와 철학이 뚜렷한데다 필름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효과가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래픽노블은 복잡한 이야기와 실험적 구성이 버거운 측면이 있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 작가인 닉 드르나소의 그래픽노블 ‘사브리나’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 후보에 지명됐다는 소식이다. ‘사브리나’는 사소한 단서를 남기고 사라진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로 그래픽노블이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사위원회는 “그래픽노블은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점점 더 전면에 나오고 있다”면서 “‘사브리나’는 좋은 소설이 갖춰야 할 점들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만화도 문학작품으로 평가받는 장르 파괴의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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